민주노동당 천영세 원내대표는 아직도 당원들에게 '천 지도'라고 불린다. 제3당의 원내대표라는 직함보다는, 노동운동의 조직지도위원으로서의 이미지가 그만큼 강렬하게 각인돼 있다.그는 크게 보면 노동계의 고려대 인맥에 속하지만, 결코 공부를 하다 의식화한 백면서생이 아니다. 충남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자연스럽게 농사를 지었다. 그리곤 친구들이 가져 다 준 책으로 주경야독하다 사회문제에 눈을 떴다. 고려대 사회학과에 늦깎이로 입학한 뒤에는 농촌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실천하면서 차차 노동운동에 전도됐다. 결국 노동 현장에 투신할 뜻을 굳히고 화학노조에서 조직 운동을 시작했다.
85년까지 한국노총에 몸담으면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느낀 그는 조직을 벗어나 노동운동가 교육 활동에 전념하다 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출범하면서 지도위원으로 추대됐다. 천 대표가 정치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97년. 그는 재야 단체 내의 숱한 이견을 조정해 '국민승리 21'을 결성했다.
진보 정당의 원내 사령탑으로서, 그에게는 요구되는 역량은 정치력이다. 당원들은 천 대표를 통해 10석 이상의 원내 위상, 제3당 이상의 사회적 영향력이 발휘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기존 보수 정당과는 확연히 다른 활동으로 개혁과제를 실천하면서 국민에게 다가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활동하게 된 천 대표는 "언론 개혁이 정치 개혁보다 우선한다"며 "언론노조·시민단체와의 네트워크를 강화해 효율적 개혁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범기영기자 bum710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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