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 국민의 생활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1인당 국민소득에 비례한다. 환경, 복지, 문화, 평균수명과 같은 경제 외적인 요소를 보더라도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 국민들이 역시 더 잘 산다. 1인당 국민소득은 물론 1인당 국민총생산(GNP)에 비례한다. 따라서 한 나라의 국민이 잘 살게 되는 것은 그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게 생산적으로 일하는가에 달려 있다.그리고 그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생산적인가는 그 나라 국민의 의식수준이나 근로의식보다는, 그 나라의 경제제도와 정책에 달려 있다. 경제정책과 제도가 국민들을 부지런하게 일하도록 만드는 나라의 국민들은 잘 살게 되는 것이고, 국민들을 게으르고 무책임하게 만드는 나라의 국민들은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 같은 혈통과 역사 전통을 가진 민족이지만 경제체제가 달랐다는 이유만으로 생산성과 생활수준의 현저한 차이를 나타낸 남북한과 통일 전의 동서독이 그 증거다.
지금 우리 사회에 때 아닌 이념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진보 노선은 소득 재분배와 복지, 형평을 강조하는 서민과 근로자를 옹호하는 노선이고, 보수 노선은 효율과 성장만을 강조하는 친 기업적 노선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적인 경제이념의 구분은 1990년대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시대착오적 구분이다. 90년대 이후 서유럽의 좌파 정당들이 정치적 이념을 시장경제 원리를 활용하여 실현하기 위해 실용주의 노선으로 선회한 것이 그 증거다.
세상에 가난한 사람 돕자는 것을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서민과 근로계층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복지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을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이런 지극히 당연한 사회적 목표 달성에 무슨 좌우 노선이 있고 이념 차이가 있는가. 문제는 어떻게 이것을 달성하는가다. 경제 문제는 하고 싶은 것 다 못하고, 가지고 싶은 것 다 못 가진다는 물질적 제약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지와 구호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의지보다 문제 해결 능력이 있어야 한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서민과 근로자를 위한다고 하고 형평과 분배를 강조하는 현 정부 아래서 오히려 서민과 근로자의 생활이 더 어려워지고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아무리 복지도 좋고 소득 재분배도 좋지만 이 같은 목표를 실현하는 데는 비용이 든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사회복지제도, 저소득층 보호, 깨끗한 환경, 좋은 교육제도, 사회기반시설이나 심지어 유능하고 깨끗한 정부조직 등 이 모든 것을 달성하는 데는 돈이 들 수밖에 없다. 잘 사는 나라 국민들은 이런 비용을 부담할 경제적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잘 사는 것이다.
우리도 잘 살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을 가질 수 있는 경제력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더 부지런히 생산적으로 일해야 한다. 국민을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도록 이끄는 정부는 국민을 잘 살게 만들 것이다. 나태와 무책임, 갈라먹기와 기강해이를 부추기는 정부는 우리의 경제를 침체시켜 우리 모두를 가난하게 만들 것이다. 경제가 활력을 잃고 침체되면 가장 먼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바로 서민층과 근로계층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중병이 들어 있다. 이 병은 사이비 전문가들이나 영합주의 정치가들이 나서서 민간요법이나 푸닥거리 같은 방법으로 치유될 일이 아니다.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보호하는 일은 의사가 사람을 살리는 것 못지않은 전문성과 경험이 필요한 작업이다.
정치 과잉과 이념 논쟁은 먹고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요즘 좌우 이념 논쟁 와중에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별의별 처방이 다 제시되고 있다. 어느 주장이 전문적인 처방이고 어느 것이 사이비인지 잘 가려 들어야 한다. 달콤하고 정서에 맞는 처방일수록 사이비 처방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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