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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스님의 태평양 횡단기]<5> 극도의 내핍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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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스님의 태평양 횡단기]<5> 극도의 내핍 생활

입력
2004.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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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수다. 샌디에이고에서 하와이까지는 4,200㎞쯤 되는데 선원도 4명뿐이었고 하루에 한끼만 먹어서 담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물론 몸을 씻는 데는 바닷물만 사용한다는 전제로 말이다.하와이에서 일본 큐슈까지가 걱정이었다. 7,000㎞ 가량의 장거리에 선원도 6명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양치질에 바닷물을 사용한 후에도 담수로 입안을 헹구어내지 않기로 했다.

장기 보존을 위해 김치에 소금을 아주 많이 넣었는데 아무리 짜도 담수로 씻어 먹지 않았다. 설거지도 바닷물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차를 마실 때도 그릇에 묻은 소금기를 참아야만 했다. 한번은 뜨거운 물로 준비한 컵라면을 입에 대자마자 너무 짜서 뱉어내고 말았다. 바닷물을 쓰던 습관이 몸에 배어서 컵라면에조차 바닷물을 잘못 부었던 것이다.

세수나 목욕도 자주 할 수 없었다. 남자들은 배가 흔들리더라도 갑판위로 나가 두레박으로 바닷물을 퍼 올려서 세수나 목욕을 할 수 있었지만 여자들은 바람과 파도가 약한 날에만 이불보로 가리고 2명씩 한조를 이뤄 씻을 수 있었다.

빨래는 가루비누를 풀어서 문지른 다음에 줄로 엮어 바다에 던져서 배가 끄는 힘으로 때가 빠지게 했다. 끌고 다니던 빨래의 줄이 풀려서 옷가지를 잃어버린 일도 있다.

배에 변기 장치가 있었지만 오래된 관들이 막혀서인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 변기를 사용하면 냄새가 진동하므로 각기 개인용 플라스틱 병이나 그릇에 소변을 보고 그것을 밖에 버리기로 했다. 대변은 처리가 곤란해서 냄새를 참으면서 변기 장치를 사용했다.

하와이부터 일본까지는 1일 2식을 했는데, 밥 누룽지 라면 등을 번갈아 먹었다. 자주 라면과 누룽지를 섞어서 끓여먹었는데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되었다.

배에 냉장고 시설은 있지만 작동되지 않는 고물이다. 장기 보존이 어렵다고 생각해서 우리는 과일을 많이 사지 않았다. 그래도 하루에 한 두개만 6등분해 먹어서 하와이에서 일본까지 36일 동안 과일을 후식으로 먹을 수 있었다.

배에 4명만 탔을 때와 6명이 탔을 때의 밥맛이 달랐다. 식욕은 사람 숫자에 비례하는 듯했다. 허나 아무리 식욕이 좋아도 항해 때에는 모두의 체중이 줄었다. 이영화씨는 13㎏이나 빠졌다.

체중 감소는 음식 부족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교대해서 배 조종을 하고 주변을 감시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긴장 상태에 있게 된다. 잠자리에 눕더라도 교대 간격이 길지 않은데다 늘 바람소리나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게다가 배의 요동에 의해서 이리저리 뒹굴게 되면 깊은 잠에 빠질 수가 없다.

사람의 습관, 즉 업(業)은 참으로 묘하다. 절약하기로 하면 부족함을 모르며 살 수가 있고 마구 쓰기로 하면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일본 오이타의 무사시항에 도착해서 물통을 열어 보니 하와이에서 담았던 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다시 그 물통에 물을 채운 후 마구 쓰고 보니 하루 만에 바닥이 났다. 36일간을 쓰고도 남길 만큼 절약해서 살 수가 있는가 하면 하루 만에 다 써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풍족과 부족은 우리의 업에 달렸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협찬:(주)영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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