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북일 정상회담은 일본은 최소한을 얻고 북한은 최대한을 얻어내는 결과로 끝이 났다. 회담의 주목적이었던 일본인 납치문제는 일본 귀국 피랍자 5명의 가족 8명 중 5명은 예상대로 고이즈미 총리가 데리고 돌아왔지만 북한이 사망 또는 입국 미확인으로 밝혀온 피랍자 10명에 대해서는 새로운 정보확인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김정일 위원장이 "백지상태에서의 재조사"를 약속했지만 이는 2002년 9월17일 정상회담 때의 "추가조사" 약속과 큰 차이가 없는 데다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지도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22일 밤 귀국 직후 고이즈미 총리가 피랍자 가족회에 회담 결과를 직접 설명하는 자리에서는 "최악의 결과" "배신 당했다" "총리는 자존심이 있나"라는 등의 비난이 터져나왔다.
고이즈미 총리는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며 "여러분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북일 관계정상화를 위해 노력해나가겠다"고 말했지만 가족회는 23일 기자회견에서도 회담에 대한 불만을 계속 쏟아내 일반 여론의 평가가 주목된다.
이에 비해 북한측은 식량 25만톤과 1,000만달러 상당의 의약품 지원,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법의 발동 유보, 조총련계 재일동포에 대한 우호적 대응 등 실리를 모두 차지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회담 후 평양 기자회견에서 "식량지원이 5명 귀국에 대한 대가가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국제기관의 요청에 따라 국제기관을 통해 실시하는 것으로 미국도 한국도 인도지원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으나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회담장을 평양 시내 백화원 영빈관에서 교외 대동강 영빈관으로 변경하고 공항영접을 2002년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서 김영일(金永日) 외무성 부상으로 낮춘 데다 회담이 오전 한 차례 1시간 30분만 진행된 점 등을 들어 일본 언론들은 "만나는 데 급급했다"고 꼬집고 있다.
공동선언이나 합의문 채택 없이 일본측만 회담요지를 발표하고 고이즈미 총리 기자회견으로 구두 합의내용을 설명한 데 비해 북한은 납치, 핵문제는 빼고 일본의 식량·인도지원만 보도한 형식도 국제관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집권 자민당은 "북한과의 협상은 문제가 있기 마련이지만 가족 5명이 일본에 온 것은 적어도 전진"이라고 평가했지만 제1야당 민주당은 "외교에 선거와 연금 문제 정국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대실패했다"고 깎아내렸다.
당초 정상회담이 7월 참의원 선거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했던 자민당은 향후 여론동향에 따른 역풍을 경계하며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초당파인 납치의원연맹 회장인 자민당의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 전 경제산업성 장관은 "총리가 간 것 치고는 대단히 불만족스럽고 빈약한 결과"라고 시인했다.
시게무라 도시미츠(中村智計) 와세다(早稻田)대 교수는 "최소한의 성과밖에 없어 외교기술적으로는 패했다"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일본 언론들도 국교정상화 교섭은 납치, 핵문제의 진전을 보아가며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아 북일 관계는 두 번의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도쿄=신윤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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