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인터넷의 대중화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초기의 인터넷을 양적으로 팽창하게 한 원동력은 개인용 이메일과 홈 페이지였다. 친구에게 이메일을 처음으로 보냈을 때의 신기함과 사이버 공간에 내 집을 마련했다는 뿌듯함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채팅의 즐거움을 제공하거나, 사람 찾기를 주선하거나, 동호회와 친목모임을 가능하게 하는 커뮤니티 기능이 크게 각광을 받았다. 최근의 인터넷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들이 감지되고 있는데, 그 중심에는 블로그(Blog)와 와키와키(Wakiwaki)가 자리하고 있다.널리 알려진 것처럼 블로그는 웹(web)과 일지(log)의 합성어이다. 다양한 웹 문서를 원문 형태로 스크랩할 수 있고, 생각을 정리하는 글을 쓸 수도 있으며, 방문자들과의 관계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도 마련되어 있다. 블로그는 멀티미디어 기능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미디어이며, 개인용 홈페이지가 진화한 형태 또는 망상(網狀)형으로 배치된 개인용 웹 페이지들의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블로그 문화를 특징짓는 키워드는 '나'의 관심과 취향이다. 광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나라는 개인이 발견한 예쁜 조개껍데기를 모아놓은 곳이 블로그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블로그에는 개인의 일상적 관심과 관련된 독특한 서정성이 배어나는 경우가 많다. 익명성의 장막 너머로 개인의 취향과 만날 수 있는 곳, 다양한 관심으로 나를 콜라주 할 수 있는 공간, 또는 반쯤 공개된 개인적인 영역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는 '중간 미디어'의 성격을 갖는다.
와키와키는 하와이 말로 '빨리'라는 뜻이다. 멀티미디어 기능을 극대화하는 블로그와는 달리, 문자 중심적인 와키와키의 인터페이스는 단순하면서도 직접적이다. 와키와키는 누구나 문서를 수정하고 편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웹사이트이다. 예를 들어 신문이라는 카테고리에 접속했다면, 다른 사람이 써놓은 글을 수정할 수도 있고 새로운 내용을 덧붙일 수도 있다. 당연히 내가 써 놓은 부분도 수정과 편집의 대상이 된다. 혼자 생각하는 '나'가 아니라 함께 생각하는 '우리'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텍스트, 무수히 많은 개인들의 참여에 의해서 집합적으로 구성되는 텍스트가 와키와키인 셈이다.
사용자와 관리자의 구별이 없다는 것은 와키와키의 커다란 특징이다. 자유로운 수정과 편집도 가능하지만, 독한 마음을 먹고 기존의 내용을 모조리 삭제하는 테러도 가능하다. 따라서 와키와키에는 네티즌의 시민적 윤리, 또는 집단지성에 대한 윤리적인 태도가 요청된다. 집단이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와키와키는 집단적 가치를 강제적으로 부여하는 억압적인 중심이나 권력을 승인하지 않는다. 개인들의 윤리적인 참여에 의해서만 생성되는 집단성, 끊임없이 변화하며 지속적으로 가치 부여되는 '집단지성'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갖는다.
앞으로 블로그와 와키와키는 인터넷 문화에서 독특한 위상을 부여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활성화되어 있는 게시판 문화의 토론적인 성격과 카페 문화의 마니아적 감수성과 함께, 인터넷 문화의 지형도에는 블로그가 대변하는 취향의 민주주의와 와키와키가 지향하는 집합적 지성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블로그와 와키와키를 들여다 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개인적인 가치에 대한 존중과 집단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의 미디어 학자 마샬 맥루한의 유명한 말처럼 미디어가 메시지라면, 블로그와 와키와키를 통해서 개인적 가치에 대한 존중과 집단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우리사회 곳곳으로 전달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일상적으로 접하는 인터넷에서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들을 잠시 엿본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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