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의 10개월에 걸친 대장정이 21일 수사결과 발표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대통령 측근비리와 천문학적인 불법 대선자금, 정치인들의 개인비리로 외연을 넓히며 정국을 뒤흔들어온 수사는 정치개혁과 검찰권 독립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특히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정치권의 파렴치는 4·15 총선에서 물갈이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주범보다는 종범을, 주인보다는 머슴을 단죄한 수사결과는 한계로 지적된다. 더욱이 기업에는 수갑을 헐겁게 채워 '정경유착'의 한 축에 면죄부를 주었다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형평성 벗어난 수사결과
대선자금의 최종 수혜자인 노무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불입건 조치됐다. 반면 이들을 추종하는 정치인들에게는 엄격하게 법을 적용했다. 검찰이 권력에서 무한정 자유롭지 못한 측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은 한나라당 832억원대, 노무현 후보측 약 120억원의 불법자금을 밝혀냈지만 형평성 문제는 끝내 풀지 못했다. 특히 이 같은 수사결과는 '5대 그룹+α'라는 표본수사에서 나온 것이어서 일부 진실에 불과하다는 평이다. 검찰은 또 한나라당이 227개 지구당에 지원한 7,000만∼2억원의 용처 수사를 현실적 어려움을 들어 포기하고, 1억5,000만원씩을 받은 입당파 의원 8명은 약식기소하면서 복당과정에서 2억원을 받은 박근혜 대표는 문제삼지 않는 등 일부 정치적 고려를 했다는 지적도 있다.
기업에는 면죄부
기업인에게 솜방망이질을 한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한나라당에 100억원 이상을 제공한 삼성·LG·현대자동차 그룹의 경우 총수는 입건되지 않았으나, 이들에 비해 미미한 돈을 준 한진 등의 회장은 오히려 기소되는 이상한 결과도 나왔다. 기업들이 정치권의 강요로 자금을 제공했고, 경제여건 등 현실을 감안해 판단했다는게 검찰 해명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함께 정경유착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재벌을 손대지 못한 것은 '반쪽수사'라는 평가다.
삼성채권 불씨 여전
삼성채권 800억원중 정치권에 제공된 302억원을 제외한 500억원은 행방이 묘연해 불씨로 남았다. 사건전모의 열쇠를 쥔 채권 매입자 2명이 해외체류중이라는 이유로 검찰은 내사중지 처분했지만, 꼬리가 잡힐 경우 '삼성게이트'화 할 수도 있다. 특히 (주)부영 등 일부 기업들이 관계에 뿌린 불법자금은 향후 공직사회에 사정한파를 몰고 올 것이라는 예상이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새로 발생하는 비리에 대해서는 신중하고 절제된 수사를 하되, 엄정하게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검찰 환골탈태 계기로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 해왔다는 점에서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검찰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여론의 높은 지지속에 진행된 수사를 통해 검찰은 오랜 숙원인 수사권 독립의 장을 열었지만, 독립된 검찰 파워를 분산시키려는 정치권의 역풍을 막아내는 것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 盧·昌 왜 입건 안했나?
검찰은 21일 불법 대선자금 및 측근 비리 수사와 관련, 노무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을 불입건하기로 결정한데 대해 "불법 대선자금 모금에 직접 공모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좀 복잡해진다. 일단 두 사람 모두 위법성이 인정됐다는 점이 논란거리다. 노 대통령은 2002년 6·13 지방선거 때 부산시장 후보 선거자금 잔여금 2억5,000만원을 최도술씨를 통해 장수천 빚 변제에 사용토록 지시하는 등 측근 비리에 연루된 사실, 이 전 총재는 삼성이 제공한 불법자금을 보관하는 과정에 관여한 점 등이 드러났다. 때문에 '위법성을 인정하고도 불입건'하는 검찰의 모순된 결론은 결국 '형평성'을 고려한 고육지책이라는 분석이다.
검찰의 기준은 일단 헌법상 재임기간중 내란·외환의 죄를 범하지 않고는 형사소추를 당하지 않는 대통령의 권한에서 출발한다. 검찰은 지난 해 12월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결과 발표 때, "(대통령의 위법성에 대해) 내부적으로 결론을 가지고 있지만, 대통령 직무의 안정성과 헌법상 권리에 따라 공개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도 위법성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을 피하면서도 "당시 발표 때의 결론 그대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에 대한 불입건은 이 전 총재에 대한 방침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검찰은 김영일 의원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 잔금 150억원이 남았다는 것을 보고하자, 이 전 총재가 보관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또 이 150억원을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지난 11월에야 삼성측에 되돌려준 사실도 확인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 전 총재가 개인적으로 이익을 취한 게 없고, 직접 수수하지도 않아 가벌성이 크지 않다"고 불입건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전 총재만 사법처리할 경우 불거질 정치적 논란에 대한 부담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분석이다.
향후 이 전 총재는 정치자금법상 공소시효(3년)를 감안할 때 면죄부를 받게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임기간중 공소시효가 정지되는 노 대통령은 향후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다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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