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박주택 지음
문학과지성사 발행·6,000원
2004년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한 박주택(45·사진) 시인이 네번째 시집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를 출간했다. 중학교 때 연탄가스 새어나오던 방에서 문학에 뜻을 뒀다는 시인이다. 입시 때 독서실에서 시만 써대 문예특기생으로 대학에 들어갔고 시인이 됐다. "시인이라는 굴레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삶이 가혹했다"는 그는 또 그 삶을 견디기 위해서 시를 써왔다.
5년 만에 내는 그의 새 시집은 시간에 대한 저항의 의지로 가득 차 있다. 오징어를 다듬고 빼낸 내장이 썩어가는 장면을 포착한 '시간의 육체에는 벌레가 산다'가 그렇다. '막 열쇠로 문을 잠그고 돌아설 때쯤/ 핏기없는 냄새가 심장까지 파고들었다/ 무덤에서 냄새의 뿌리로 태어난 수많은 구더기들이/ 시간의 육체 속으로 흩어져갔다' 박씨가 보기에 오징어의 부패한 냄새는 지나가는 시간에 대한 항거이며, 구더기는 그 항거의 잔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저항으로 박씨가 찾아낸 것은 잠이다. 잠을 잠으로써 지나가는 시간을 인식하지 않고 놓일 수 있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표제시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에서 잠자는 화자는 꿈을 통해 시간을 뛰어넘는다. 꿈은 시적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며, 시가 쓰여지는 지점이다.
'나 다시 잠에 드네, 잠의 벌판에는 말이 있고/ 나는 말의 등에 올라타 쏜살같이 초원을 달리네/ 전율을 가르며 갈기털이 다 빠져나가도록/ 폐와 팔다리가 모두 떨어져나가/ 마침내 말도 없고 나도 없어져 정적만 남을 때까지'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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