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맞벌이의 함정엘리자베스 워런 등 지음·주익종 옮김
필맥 발행·1만3,000원
지난해 3·4분기 도시 근로자 가구의 월 평균소득이 처음으로 300만원을 넘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이다. 가구주의 소득은 8.1% 증가한 반면 배우자 근로소득은 18.8%가 늘었다. 그런데 실제 생활형편은 더 어려워졌다. 학원비 등 사교육비와 영육아 보육료 부담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이에 대한 실증적 조사 결과다. 미국의 경우 현 중상층들은 한 세대 전보다 교육도 많이 받았고 수입도 많다. 게다가 여자들도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번다. 그런데도 재정 파탄에 빠지는 중산층 가정이 크게 늘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과소비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었다. '과시욕' '사치열기' 등으로 인해 필요 이상으로 소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산법 전문인 미국 하버드 대학 법대 교수인 어머니와 MBA 출신인 딸이 쓴 이 책은 이 같은 통설에 대해 정면 반박하고 있다. 이들은 중산층 부부가 자신들은 물론 자녀들도 중산층의 삶을 계속 누릴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이 결국 파산을 불러온다고 주장한다. 자녀들이 좀 더 잘되게 하기 위한 부모들의 욕구가 가정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중산층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좋은 학교를 나와야 하고, 그러려면 좋은 학군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 이는 그 지역의 주택 가격을 비정상적으로 상승시킨다. 또 대학 졸업장은 어느새 필수가 되고, 이는 다시 조기교육의 열풍을 초래한다. 이를 충족시키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맞벌이 부부가 는다. 여기에 가계신용이 확대돼 손 쉽게 돈을 빌릴 수 있게 됐다.
오늘날 미국 중산층 가정은 1970년대 혼자 벌던 중산층 가정에 비해 75%나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럼에도 그 때에 비해 가정의 재정적 안정성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녀들의 교육과 직결된 집 값 때문이다. 좋은 학교가 있는 학군에 위치한 집 마련과 연관된 지출이 소득의 3분의 2를 차지하다 보니 여유가 없어졌고, 맞벌이 부부는 집안에 아무 일이 없어야 굴러가는 외줄타기 광대의 신세가 됐다. 사실상 '집 있는 빈민'과 다를 바가 없게 된 '맞벌이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 것일까. 저자들은 두 가지를 제안하고 있다. 교육개혁과 금융 재규제다. 학군제 폐지, 유아교육의 공교육화, 대학등록금 동결, 신용대출 제한 등이 그것이다. 또 하나는 각 가정의 '재정 소방훈련'이다. 유사시 부부 한 쪽의 수입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의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서울 강남의 비싼 집 값이 교육여건 때문이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아이들에게 학교 갈 때 신을 신발과 걸스카우트 옷을 사주고 나면 주택대출 이자 낼 돈이 모자라게 됨을 갑자기 알아차리게 된 모든 부모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거나 형제자매, 친구, 직장동료다. 그들은 대학을 다니고, 아이들을 기르고, 집도 장만하면서 규칙에 맞게 살아왔는데도 좌절에 빠졌다. 이제 그 규칙을 고쳐 그들의 가정이 실의에서 벗어나 기운을 내어 다시 희망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때다." 이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다.
이상호/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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