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의 재발견애드리언 블루 지음·이영아 옮김
예담 발행·1만2,000원
진정한 사랑을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 연인의 눈빛은 너무 모호하다. 오역할 가능성이 많다. 섹스는 사랑의 종착역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너무 타락했다. 그래서 거짓이기 쉽다. 반면 키스는 여전히 시작 단계의 애정을 확인하는 중요한 징표이다. 성의 상품화에도 불구하고 현대에도 별로 흠집나지 않은 애정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영국의 문화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이 책에서 키스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전문가들이 걸어갔던 지적 영역으로의 여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따라가 볼 작정"이라는 저자의 말이 허풍이 아닐 정도로 이 책은 생물학에서 시작해 인류학, 철학, 페미니즘, 신화와 문화, 사회학 등 방대한 영역에 걸친 키스 이야기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주고 있다.
키스는 생물학적으로 매우 복합적인 메커니즘을 통해 실현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입 속 깊숙이 키스할 때는 '머리를 앞으로 숙이고 상대의 코와 부딪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리며 목과 등의 근육들을 움직인다. 두개골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뼈인 턱과 얼굴의 34개 근육이 활동에 들어간다.' 하지만 정말로 뜨거운 키스는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때는 인체의 모든 근육을 사용해야 한다. '팔로 서로를 끌어안고 목과 등과 어깨의 근육들이 바짝 긴장한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칼로리가 소모되고, 실제로 전기도 통한다.
저자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키스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과학자들의 주장에 동의한다. 아기들이 태내에서부터 빨고 핥는 행위를 하고 있으며 태어나자마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젖꼭지를 찾아 힘차게 빨아대는 것이 키스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사랑의 행위가 아닌 좀 별스런 종류의 키스 이야기도 있다. 예수를 팔아 넘긴 유다의 '배신의 키스'나 사랑은 물론 생명을 빼앗는 흡혈귀의 키스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또 저자에 따르면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 등장하는 키스는 사랑으로 포장한 여성 차별이다. 혼수 상태에 빠져있는 여자는 키스에 동참하지 못하며, 키스는 그녀의 무기력한 운명을 봉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다룬 초기 동화들의 내용이 잠자는 여자를 겁탈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니 그나마 이 정도도 다행인지 모를 일이다.
책의 많은 부분은 역시 애정행위로서 키스의 역할을 설명한다. 밀란 쿤데라의 단편 '우스꽝스러운 사랑'의 한 대목은 키스의 권위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그의 몸에 팔을 두르고 입을 그에게로 가져갔다. 그는 그녀를 밀어내며 말했다. "키스는 사랑하는 여자하고만 한다구." "그래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구요?" "그래." "그럼 할 수 없죠. 옷이나 벗어요!"> 키스가 성교보다 더 깊은 정을 통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키스를 좀 더 은밀하게 생각하며 키스로 대단한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 분명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녀는>
키스 자체가 상품이 되기 어려운 것인지는 몰라도 키스의 이미지는 이미 엄연한 상품이다.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한때 전세계 대학 기숙사 방마다 안 걸린 곳이 없을 정도로 인기 있었던 사진작가 로베르 두아노(1912∼1994)의 '시청 앞에서의 키스'는 실은 연출된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 사진을 보고 솔직한 사랑의 포착이라고 믿는 것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키스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책이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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