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산어보를 찾아서(전5권)이태원 지음, 청어람미디어 발행
'현산어보를 찾아서'는 '실사구시의 정신'을 몸과 마음으로 되살린 책이다. 저자 이태원의 노력으로 정약전의 '현산어보'가 온전히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 책의 디자인 의뢰를 받고 원고를 처음 보는 순간이 새롭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산어보'라는 이름만 희미하게 기억할 뿐이었다. 저자의 8년 여의 땀과 시간이 쪽쪽에 베인 원고 사이엔 펄펄 뛰는 물고기, 구수한 남도 사투리, 그리고 소외되었지만 건강하고 의연한 한 학자의 정신이 온전히 담겨 있었다.
나는 흔히 접할 수 없는 원고를 보고 욕심이 났고, 이런 책을 만들 수 있게 돼 행복했다. 무릇 "책에는 격이 있다"는 은사님의 지론을 떠올리며 좋은 책에 걸맞게 잘 만들어 보고 싶었다. 내 눈앞에 산해진미가 펼쳐졌고, 독자들에게도 그 맛을 고스란히 전해 주리라! 마침내 3개월 여의 작업 끝에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다행히 많은 독자들과 매체의 성원도 이어졌다. 한국일보가 주최하는 백상 한국출판문화상에서 교양부문 저작상까지 받았다.
이 책에는 많은 도판들이 있다. 저자가 발품으로 찍은 사진 1,000여 컷이 모아졌고, 강원도 삼척에서 살면서 3년 여의 시간 동안 그려낸 박선민의 '물고기 세밀화'는 사진에서 느낄 수 없는 섬세함과 싱싱함을 더하고 있다. 저자는 생물 교육을 전공한 '현직교사'의 특기를 살려, 자잘한 설명까지 친절히 덧붙이면서 천천히 알기 쉽게 '물에 사는 생명'들을 추적하고 소개한다. '이것이다'라는 강요나 주장 없이 유유히 독자를 동참시키는 이태원의 문체도 이 책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중 하나다.
또 수시로 식탁에 오르거나 바닷가에서 먹게 되는 해물탕과 횟감에 한두 마디씩 늘어놓게 한다. 포장마차의 홍합을 먹으면서 "진주담치"니 하고, 홍어를 먹을 땐, "홍어는 암놈이 더 맛있는데, 그래서 숫홍어들은 어부들에게 수난을 많이 당했지"하게 한다.
이 책엔 세대를 거치면서 잊혀지고 사라지는 해양생물들로 가득하다. 저자는 '현산어보' 속에 한문으로 표기된 물고기의 우리말 이름을 어렵게 찾아내지만, 그 물고기는 종종 멸종되었거나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빙하기의 공룡이 아니다. 겨우 200년 전의 물고기들이다. 저자는'자산어보'를 읽고 나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한 권의 책이 그를 10년여의 '행복한 탐험'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현산어보를 찾아서'는 내 책꽂이에도 자리하게 되었다. 고전의 가치란 이런 것이리라.
다가오는 여름, 아이들과 함께 가까운 바닷가에서 갯펄을 뒤적여 보시라. 실하고 짭조름한 책 한 권 들고 말이다.
/조혁준·북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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