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따라 나선 아이 나비가 되고이가영 지음
뜨인돌 발행·9,000원
"그날이 왔다. 아빠의 꿈인 생태학교를 세울 터가 마련된 것이다. 새로운 생활이 펼쳐질 그곳의 이름은 새골. 듣기만 해도 산내음이 솔솔 풍기는 싱그러운 이름이었다."
지금은 열여덟 살 여고 2학년이 된 가영이는 7년 전 여름을 잊지 못한다. 편한 서울 생활을 접고 강원 횡성군 갑천면 하대리 산골로 찾아 들어간 바로 그 날. 그 때 가영이는 상상했다. 꽃이 아름답게 핀 들판, 맑은 계곡, 아름다운 숲길….그러나 아니었다. 외진 산 속에 쓰러져 가는 집 한 채. 잡초가 무성했고 반쯤 내려앉은 지붕에서는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았다. 구멍이 뻥뻥 뚫린 흙벽, 찢어진 창호지 문, 거미줄 늘어진 천장….
마실 물도, 전기도 없는 그곳에서 가영이 가족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폐가를 고치고 돌밭을 고르고 나무와 꽃을 심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그곳에는 홀로세 생태학교가 들어서 있다. 나비, 쇠똥구리 사육실을 갖추고 풍뎅이 박물관과 식물 생태관이 있는, 도시 아이들이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나비 따라 나선 아이 나비가 되고'는 가영이의 일기다. 자연과 교감하는 가영이 가족이 실제 홀로세 생태학교를 일군 7년의 생활이 녹아 있다. 일기는 두 가지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생활 이야기, 다른 하나는 자연 관찰기이다.
생활은 불편했다. 산이 깊어 여름 밤에도 추위에 몸이 떨렸다. 서둘러 흙집을 짓고 아빠는 방에 불을 지폈다. 그런데 갈라진 틈새로 가스가 새어 나왔다. 엄마도 오빠도 가영이도 휘청휘청했다. 다행히 텐트에서 자던 아빠가 멀쩡해 화를 면했다. 학교 가는 길도 험했다. 울퉁불퉁 비포장 길을 2㎞나 걸어야 했다. 자전거를 장만했지만 깊게 팬 길에서 절벽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아빠는 부지런했다. 생태학교에 길을 내고 땔감을 만들었다. 마을 이장 일도 3년이나 했다. 식물, 곤충의 먹이 챙기기와 실험실 나비집 관리는 엄마 몫이다. 가족 음식 만드는 것도 엄마가 할 일이니 쉴 틈이 없다.
책 제목처럼 가영이가 나비가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인 98년이다. 홍점알락나비 애벌레를 키운 가영이는 어렵게 녀석을 우화(羽化·날개 있는 성충으로 변하는 것)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기쁨에 손수 꿀물을 나비에게 주었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나비가 가영이의 손 위에 사뿐히 앉은 것이다. 나비와 하나가 된 순간이었다. 한번은 죽어가는 도롱뇽을 발견했다. 매끄럽고 촉촉해야 할 피부가 심하게 말라 있었다. 몸뚱이는 흙범벅이었다. 얼른 물가에 데려다 주었다. 5분, 10분이 지났다. 다시는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녀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꼬리를 휘저으며 물속으로 헤엄쳐 갔다. 가영이의 정성이 도롱뇽을 살린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은 이곳까지 위협하고 있다. 겨울이면 쇠꼬챙이와 족대, 비닐 포대를 들고 와 잠자는 북방산 개구리를 사냥한다. 이들을 타이르고 꾸짖어 보내기를 수십 차례. 처음엔 못마땅해 하던 이웃들도 이제는 함께 개구리를 지킨다. 자연에서 사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가영이의 글솜씨도 빼어나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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