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우리집의 커다란 벽시계는 안방이 아니라, 형들의 책상이 있는 건넌방에 있었다. 부엌이나 마당에서 어른들이 지금 몇 시냐고 물으면 그때그때 형들이 대답했다. 그런데 형들이 없을 때가 문제였다.어느날 어머니가 부엌에서 몇 시냐고 물었다. 저녁을 할 시간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묻는 것 같아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큰 바늘은 가마솥 쪽에 가 있고, 작은 바늘은 밥솥 쪽에 가 있어. 그러니 밥해도 돼."
그때 어머니는 내게 '시간을 중계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큰 바늘은 어느 숫자와 어느 숫자 사이에 있고, 또 작은 바늘은 어느 숫자 가까이 있는지. 그 중계를 하며 자연스럽게 시계 보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얼마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가 시계를 보고 시간을 말하기, 또 시간에 맞춰 시계 바늘 그리기 숙제를 하며 온갖 짜증을 다 내는 것을 보았다. 그 아이는 숫자로 시간을 알려주는 값싸고 좋은 디지털 시계도 많은데 어른들은 왜 아직도 바늘이 있는 시계를 차고 다니며 자기들을 골치 아프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아이로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아주 짜증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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