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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수표교 복원보다 복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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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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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환경사에 새로운 장을 연 청계천 복원이 수표교 이전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1959년 청계천을 복개할 때 장충단 공원으로 이전했던 수표교를 원래 자리인 청계2가로 되돌리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문화재 보존론자들은 수표교를 원위치로 되돌리는 것이 문화재의 가치를 높인다는 주장이다. 수표교의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려는 데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원위치 복원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데 있다.청계천은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 등으로 둘러싸인 산지형 하천으로 유역 경사가 심하다. 그리고 청계천 유역은 조선 왕조 도읍 이후 지난 600년간 끊임없이 개발되어 왔다. 특히 지난 백년간 급속한 도시화가 이루어졌고, 지금은 80%에 가까운 지면이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인 불투수면이 되었다. 유역 경사가 심하고 불투수면이 넓은 하천은 비가 오면 물이 급속히 불어난다.

역사 기록을 보면 청계천은 조선 초기부터 홍수가 자주 발생하였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제방 쌓기와 준설 공사를 계속해 왔다. 이러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청계천 하류 지역에는 폭우시 물난리가 발생했다. 불투수면 증가를 기준으로 지금의 하천 단면을 계산해 보면 수표교가 건설될 조선 초기보다 유역 면적이 7, 8배 이상 넓어야 한다. 게다가 최근 기상 이변으로 폭우 발생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그래서 이번 복원사업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폭우에도 범람하지 않는 치수 기능 확보이다. 복원사업으로 청계천이 원래 하천 모습으로 돌아가지만 과거보다 상당히 깊고 넓어졌다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수표교를 원위치에 옮기면 치수 기능 확보가 불가능해진다. 깊고 넓은 하천 한가운데 작은 교량을 세워두는 모양도 우스울 뿐만 아니라 물 흐름을 방해한다. 또한 조선 초기 돌로 만든 다리이기 때문에 구조적 안정성도 매우 취약하다. 사람이 다니는 것은 고사하고 자체 하중을 견디기 위해서도 이전시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더구나 폭우시 급류에 무너질 위험도 크다. 하폭이 좁은 상류로 옮기려는 광교도 여건은 비슷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재는 원래대로"라는 주장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대안은 복제 수표교를 만드는 것이다. 21세기 기술로 우리 선조들이 만든 수표교를 지금의 청계천에 맞게 확대해서 복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를 자동차와 사람이 다니는 것이다. 하천에 다리를 놓는 것은 사용하기 위한 것이지 보기 위한 것은 아니다.

복제품이라고 문화재적 가치를 폄하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을 대표하는 뉴욕 자유의 여신상도 원상은 프랑스 파리 룩상부르 공원에 있다.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가 제작하여 미국 독립 백주년(1876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886년에 선물로 보낸 것이다. 미국은 프랑스 2월 혁명 백주년(1948년) 기념 선물로 자유의 여신상을 작은 크기로 복제하여 다시 프랑스에 보냈고 이것은 파리 센강 미라보 다리 부근에 세워져 있다.

수표교를 원래 위치에 되돌려야 한다는 것은 무덤에서 발굴한 문화재를 무덤 안에 보관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주장이다. 우리가 정말 수표교의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면 지금의 기술로 더 크고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수표교를 복제하여 평양에도 하나 보낸다면 통일을 염원하는 또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개성의 선죽교를 복제하여 청계천에 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제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문화재 안목이 필요하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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