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밀다호를 운행하려면 최소한 건강한 남자 2명이 필요하다. 물론 3명이면 더 좋다. 나의 도반들 가운데 참선에만 전념하는 구봉선사가 있다. 서해안에서 수 차례 같이 배를 탄 적이 있어서 동참한다면 뱃일을 잘 할 수 있는 스님이다.나는 갖가지 감언이설을 썼다. 그러나 스님은 부산 앞바다에서 한 번 요트를 타고 난 후에 멀미 때문에 같이 갈 수 없다고 거절했다. 다른 도반에게도 권해 보았지만 참여하기는커녕 항해 자체를 위험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할 일이 많은데 왜 죽으러 가려고 하느냐"면서 오히려 나를 만류했다.
전문가를 고용하면 안전하지만 목숨을 거는 일이라서 많은 보수를 지불해야 한다. 신도의 보시금으로 배를 구하는 것도 죄송한데 돈까지 지불하면서 사람을 채용해 태평양을 횡단한다면 항해를 수행의 한 방편으로 삼으려는 나의 본래 의도와 다르게 된다.
나와 인연 있는 허공장회 신도들에게 선원을 모집한다고 공고했다. 남편을 저승에 먼저 보낸 김정자(65)씨와 이영화(55)씨 등 2명이 1차로 참가를 희망해 왔다. 또 한국 최초의 여성 요트단을 만들고 싶다는 부산의 아마추어 주부 요트 선수 정수옥씨도 참가하기를 원했다.
나는 그들에게 첫째 집안일을 깔끔하게 정리하되 필요하면 유서를 써 놓고, 둘째 가족을 위해서 보험을 들어 둘 것이며, 셋째 바다에서 질병이나 사고로 사망할 경우에 수장을 할 수밖에 없으니 사고 시에 가족이 시체를 찾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샌디에이고에서 출항하기 전날 밤 로스엔젤레스 반야사의 현철스님 앞에서 합동 유서 비슷한 것을 만들어 각기 서명 날인하고 사망하는 일이 있으면 그 서류를 가족들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샌디에이고에서 호놀룰루까지 23일의 항해 기간에 선원 지원자들의 실망과 고통이 무척 컸을 것이다. 신도 2명은 광고나 영화에서처럼 멋진 호화 요트를 상상하면서 바다에서 고독만 참으면 되는 줄 알았으리라. 배의 흔들림이나 각자의 플라스틱 통에 소변을 받아서 바다에 버려야 하는 궁핍함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수옥씨는 대양항해를 배우러 왔는데 오히려 나에게 항해술을 가르쳐야만 했다. 몸이 가느다란 그녀는 건강 때문에 호놀룰루에서 하선했다. 그 빈자리를 채워 주려고 하와이 백련사의 세인 스님, 허공장회 회원인 김옥희(65) 홍영숙(57)씨 등 3명이 나섰다. 두 신도는 각기 남편의 허락을 받고 집안 일을 정리한 후에 승선했다.
우리 선원들을 다짜고짜 괴롭힌 것은 승선 초기의 심한 멀미였다. 세인 스님은 남자인데도 출항 후 3일간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멀미를 했다. 신장이 하나뿐인 스님은 붉은 소변을 피로 여기고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김옥희씨는 10여 일 동안 약을 먹지 않고 멀미를 극복하려고 했으나 위장은 물론 소장의 노란 물까지 토해내고 완전 탈수상태에 이르렀다. 그대로 두면 죽을 것 같았다. 약의 힘으로 멀미를 이겨야만 했다.
밤낮없이 돛을 올리고 내리며 배를 조종하는 일도 무척 힘들다. 항해 중에 선원들은 다 같이 "금생(今生)에 다시는 배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말도 덧붙였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 힘들고 괴로웠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알 수 없을 거야."
협찬:(주)영조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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