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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국회 신인열전]<17>우리당 문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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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국회 신인열전]<17>우리당 문학진

입력
2004.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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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총선부터 4수 끝에 17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게 된 문학진 당선자는 정가에서 '문 세표'로 통한다. 16대 총선 때 민주당 후보로 경기 광주에 출마, 국회의원 선거 사상 최소 표차인 3표차이로 분루를 삼켰기 때문이다.문 당선자 자신의 표현대로 당시 '미치고 팔짝 뛰고 싶었던' 그는 낙선에 불복, 재검표를 요청하고 선거무효소송까지 제기했으나, 1표를 줄이는 데 만족해야 했다. 이후 표밭갈이에 전념하며 절치부심하던 그는 2년 뒤 하남 재선거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다시 2,000여표 차로 한나라당 김황식 의원에게 고배를 마셨다. 그는 "내 인생 중 그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복학을 거듭했던 그는 입학 10년 만인 1984년 늦깎이 졸업했다. 이후 조선일보에 입사했으나 당시 편집국장이던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가 "신원조회 때문에 신문기자는 어렵다"며 난색을 표시, 6개월 만에 해직된 후 월간조선을 거쳐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했다. 평기자 시절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고문기술자 이근안 사건' 을 특종보도했던 그는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아웃사이더'의 한계를 절감, 1995년 정계에 발을 디뎠다. 참여정부의 청와대 정무1비서관으로 발탁됐다가 6개월 만에 사표를 던지고 총선에 출마, 문민정부 사정비서관을 지낸 이충범 후보를 누르고 승리를 거뒀다.

문 당선자는 "부모님이 모두 함경도 출신으로 6·25 때 월남한 실향민 가족"이라며 "국회가 개원되면 남북 교류 활성화 등을 포함한 통일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당 노선과 이념적 정체성을 둘러싼 보·혁 갈등을 중재하고 아우르는 구심점 역할도 하고 싶다"며 속내를 내비쳤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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