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존 케리 상원의원이 17일 캔자스주의 주도 토피카를 찾았다. 1954년 미국 인종차별 철폐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브라운 판결'을 이끌어 냈던 이 곳에서 11월 대선을 앞둔 두 후보는 인권의 승리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인종간 불평등을 얘기했다.부시 대통령은 과거 흑인만 다니던 옛 먼로 초등학교 터에서 "50년 전 오늘 대법관 9명은 헌법은 한 인종에 대한 격리와 모욕을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며 "모든 세대를 두고 인권 존중의 습성을 가르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몇 시간 앞서 먼로 초교에서 6블록 떨어진 캔자스 주의사당을 찾은 케리 의원은 "브라운 판결이 불평등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으며 미래의 더 큰 도전은 모두를 위한 기회의 사다리를 세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선전이 불붙기 시작한 이래 두 후보가 같은 장소를 찾아 같은 주제를 얘기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흑인 표를 염두에 둔 행보이지만 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과거 인종 격리 교육의 중심지를 찾은 데는 브라운 판결이 들려주는 인권 존중의 교훈이 미국인들의 마음에 생생히 살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51년 여덟 살의 린다 브라운은 집에서 네 블록 떨어진 섬너 초등학교를 놔두고 버스를 타고 1.6㎞를 가야 하는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린다의 아버지 올리버브라운은 딸을 그 백인학교로 전학시키려 했지만 교장이 허락하지 않았다. 린다의 검은 피부가 섬너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라운은 소송으로 맞섰고 연방 대법원은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사건으로 불리는 이 소송을 3년간 심리한 끝에 "분리되더라도 평등하다"는 1896년 대법원 판결을 뒤집어버렸다.판결은 흑인과 백인 공학의 출발점이 됐고 다음 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백 분리 버스 승차 거부 운동에 불을 질렀다.
50년이 흐른 지금 역사적 판결의 의미를 기리는 행사들이 한창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우울하다. 자국의 군인들이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이라크인 포로들을 학대하고 그들의 인권을 짓밟은 사건은 미국인들에게서 브라운 판결에 대한 자부심을 앗아가 버렸다. 이제 그들은 인권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울 브라운과 킹 목사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승일 워싱턴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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