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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 <43>세계선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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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공동善 지킴이 서영훈 <43>세계선린회

입력
2004.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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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여름이었다. 수십 년 전부터 잘 알고 지내온 이수민(李秀民) 목사가 나를 찾아왔다. 해방 전 중국 룽징(龍井)에서 태어난 그는 그곳에서 중학을, 귀국 후 한신대와 뉴욕 유니온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가 됐다. 그는 한국YMCA를 거쳐 홍콩의 아시아YMCA 총무, 제네바의 세계YMCA연맹 사무총장 등으로 근무한 뒤 19년 만에 귀국했다. 내 둘째 아들 유석(維錫)이가 스위스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에도 친절히 대해준 고마운 분이었다.이 목사는 YMCA에서 40년간 일한 경험을 살려 어려운 인류 동포를 이웃으로 하는 세계선린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못한 저개발국가에 가서 개발복지사업을 하자는 것이었는데 국내 사정을 잘 모르니 나보고 조직을 만들어 이사장이 돼 달라고 했다.

나도 대한적십자사에서 인도주의운동을 오래 한 사람으로서 찬동했다. 그리고 이사장은 명망이 있고 힘이 있는 분을 고르려고 했으나 성사가 안 돼 내가 이사장, 고건(高建) 전 서울시장이 부 이사장, 이 목사가 회장이 되어 그 해 8월 세계선린회가 발족됐다. 정근모(鄭根謨) 박사, 이춘조(李春朝) 한적 서울지사 부지사장, 곽영훈(郭英勳) 환경그룹회장, 장정자(張貞子) 현대고 교장, 신익호(辛翼鎬) 목사, 정경균(鄭慶均) 서울보건대 학장, 이 목사와 함께 해방 전 룽징에서 같이 자란 몇 분 등 15명으로 이사회를 구성했다.

우선 이 회장이 과거 북간도라고 불렸던 중국 옌볜(延邊)의 조선족 동포들을 위해 새마을운동 같은 사업을 하자고 했다. 그 곳은 옥수수 농사 외에는 수입원이 없기 때문에 소를 기르는 목축을 부업으로 가르치고 그 밑천을 대주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때 곽영훈군이 500만원을 쾌히 내놓았다. 이 회장이 9월에 옌지(延吉)에서 한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 있는 장항촌(獐項村)이란 마을 주민들에게 소 70마리를 사주었다. 선린촌(신촌)운동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듬해 8월 이 회장과 고건씨, 정경근 박사, 나 등이 그 곳을 방문했다. 마을 뒤 넓은 골짜기로 가보니 소 70마리가 유유히 풀을 뜯고 있었다. 선린촌 회장의 말이 옥수수농사 1년 수입이 우리 돈으로 10만원 정도인데, 7만원을 주고 산 소 한 마리 값이 그 사이에 10만원으로 올랐다면서 여간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공동축사도 만들어주고 가옥개량, 길 넓히기 등도 했다.

그 쪽에서 우리의 파트너로 일한 분들은 국제연의회 회장 김영만(金永萬)씨, 부회장 신창순(申昌淳)씨, 전인대 대의원이며 옌볜자치주 의장인 오장숙(吳長淑)씨 등이었다. 그들은 "남한에서 여러 사람이 와 이것저것 해준다고 했는데 거의 다 공수표가 됐다. 그런데 이번 일은 농가의 실 수입에 도움이 되고 자립, 자조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어서 큰 기대가 된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백두산에 올라가 2년 전 정주영(鄭周永) 회장과 왔을 때 보지 못한 천지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아침 햇살이 비치는 천지를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시 하나를 얻었다.

登參兮白頭聖山(그리던 백두산 다시 올라)

俯瞰兮天潭靈池(신령한 천지를 굽어봄이여)

霧散天光霽(피어오르는 아침 안개 빛나는 햇살에 흩어지고) 雲飛池中徊(나르는 조각구름 천지 속에 떠도네) 千古秘藏景(고스란히 간직한 태초의 신비 속에) 天下仙遊界(신선들 여기 모여 노닐 만한 곳일세) 追遠蒼古史(먼 옛날 조상 나라 역사 생각하며) 更冀弘益世( 복된 새 세상을 다시금 비옵니다)

그 후에도 국내에서 모금해 소를 사 주는 일과 문화회관 건립 등을 계속해 현재는 선린촌이 신광촌, 대성촌, 영광촌 등 12개 부락으로 늘어났고 키우는 소가 1,200여 마리가 된다. 또 베트남 호치민시에 봉재기술학교를 세워 월남전 당시 우리 군인들이 씨를 뿌린 한국계 2세들을 대상으로 직업교육을 하고, 대학에 기숙사, 장학금 등을 제공했다. 방글라데시 비탄시에는 초등학교 교실을 만들어 주었다. 나는 지금도 세계선린회 이사장으로 있으나 하는 일이 워낙 많아 충분히 돕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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