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산물 애용 운동이 낳은 구호 가운데 '신토불이'(身土不二)는 가장 강력한 호소력을 가진다. '음식이 곧 약'이라는 전통적 인식과 맞물려 순식간에 대중의 뇌리에 파고 든 이 구호는 이제 농산물 품질은 물론 한방 약재의 효능을 가르는 기준으로까지 통용될 정도가 됐다. 외국산 농산물과 약재에 대한 거부감의 근저에는 어김없이 신토불이에 대한 믿음이 뿌리박고 있다. 이런 믿음의 근거는 무엇인가. 한방 약재학인 본초학(本草學)의 권위자인 자생생명공학연구소 안덕균(安德均) 소장은 "근거와 출처가 불분명한 구호"라고 잘라 말했다.
―'신토불이'란 말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요.
"출처가 불분명합니다. 말 뜻으로 보아 누구나 한방에서 나왔으리라고 여기지만 한방 의학에서 정착된 개념이 아닙니다. 다만 조선 세종 때 편찬된 '향약집성방' 서문에서 비슷한 인식을 엿볼 수는 있습니다. 세종이 향약집성방의 편찬을 명한 것은 훈민정음 창제와 배경이 비슷합니다.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의 문자생활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듯, 당재(唐材·중국 약재)에 주로 의존했기 때문에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일반 백성들에게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를 중심으로 간단한 처방을 내려주기 위해서였지요. 민간 구급처방 성격이 강했고, 비싸고 구하기 힘든 중국 약재를 대체해 보려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으니 조선 사람의 병을 고치는 데는 조선에서 나는 약재가 적합하리라는 생각을 담은 것은 당연했지요."
―한방 의학 차원에서 '신토불이'를 입증하려는 노력은 있었나요.
"없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런 의뢰를 여러 차례 받았지만 거절했습니다. 구호를 어떻게 의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겠습니까."
―'천리 밖의 음식을 먹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신토불이'도 이런 거리 개념에 근거한 것인가요.
"멀리 떨어진 곳의 음식을 먹지 말라는 말은 알레르겐(Allergen·알레르기 원인 물질)이 확인되지 않았거나 풍토병의 원인인 그 지역 특유의 기생충이나 병원체 감염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의 표현입니다. 경험으로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은 음식물에 대한 주의를 강조한 말로서 나름대로의 합리성이 있습니다. 물론 식품·약재 안전성 검사가 정착된 오늘날에는 통용되기 어렵지요. 이를 체질과 토질의 관계라고 본다면 '신토불이'와 같은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주장되는 '신토불이'는 그런 거리 개념보다는 자연에는 없는 인위적 국경선을 기준으로 '우리 것'과 '남의 것'을 가르고 있다는 점에서 발상이 전혀 다릅니다. 수도권 주민이라면 제주도보다는 중국 산둥(山東)성이 오히려 가깝지만 제주도 것은 우리 것이고 산둥성 것은 남의 것이 되는 식입니다."
―체질과 토질의 관계는 인정할 만합니까.
"오행(五行)으로 보아 토(土)는 중앙·중심이고, 인체에서는 비위(脾胃)에 해당합니다. 그만큼 중요하지요. 또 한방은 누적된 경험의 과학이어서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택합니다. 체질과 토질의 관계도 그 연장선상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토질과 기후가 비슷하다면 그것이 어느 땅에서 나왔건 비슷한 효능(약재)과 영양(식품)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체질과 토질의 관계는 절대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사는 사람도 체질이 서로 다르니까요. 흔히 일본에서는 칼슘 섭취량이 문제가 되는데 일본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칼슘 함유량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오히려 한국 농산물을 먹는 것이 도움이 될 겁니다."
―한약재의 경우 중국산과 국내산의 차이가 큽니까.
"종류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근본적인 차이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음양곽(淫羊藿)이나 백부자(白附子) 등은 우리나라 특산종이 좋습니다. 반면 인삼은 중국 랴오닝(遼寧)·지린(吉林)성의 고산 지역의 재배 여건이 우리보다도 낫습니다. 제대로 발표되진 않고 있지만 중금속이나 농약이 검출되지 않아 엑기스를 많이 수입해 쓰고 있습니다."
―국내산이 우수하다는 얘기도 많은데….
"천연 약재는 공기 중에서 쉽게 분해되므로 급속한 약효 변화를 부릅니다. 햅쌀과 묵은 쌀의 맛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지요. 진피(陳皮)처럼 오래 지나야 독성 물질이 분해돼 안정성을 보이는 약재도 있지만 인삼, 창출(蒼朮), 당귀(當歸) 등 대부분의 약재는 채취한 지 2년이 지나면 약효가 크게 떨어집니다. 갓 채취한 것과 오래 묵은 것을 같이 비교하는 예가 적지 않습니다. "
―과거 우리나라 약재보다 중국 약재를 선호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에서 채취할 수 있는 약재가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약방에 감초(甘草)'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국내에서는 거의 나오질 않고 약효도 떨어집니다. 그러니 수입 약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지요. 이런 현상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한방 약재의 80%는 중국산을 수입해 쓰고 있습니다. 국내산 약재가 워낙 비싼 것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옛날에는 당재가 귀해서 서민들과 거리가 멀었지만 지금은 30여종의 국내산 약재가 그렇게 됐지요."
―'본초강목'(本草綱目)을 비롯한 중국 의서에 대한 의존도가 컸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런 요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향약집성방이나 동의보감 등에서 보듯 국내산 약재를 활용하려는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서식하는 식물종이 한정돼 있는 근본적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새로운 약재를 발굴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발견돼 거꾸로 들어오는 것들도 있을 정도지요. 네덜란드 사람들이 콩에서 찾아낸 이소플라보노(Isoflavono)란 물질은 골다공증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원 정선 지방의 쥐눈이콩에는 훨씬 많은 이소플라보노가 들어 있어서 효과가 두 배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 산사(山査)는 한방에서는 오랫동안 소화제로 써 왔는데 서양 사람들이 '써큐란'(서양산사)이 고지혈증 예방·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해서 알아보니 우리나라에도 산사나무가 많이 있고 약효가 조금도 뒤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지요. 은행도 과거 한방에서는 열매만을 이용했지만 그 잎의 성분이 뇌혈관 기능을 개선하고 기억력을 높이는 것으로 드러났지요. 한편으로 과거에는 장복해도 괜찮다고 여겼던 감초가 알고 보니 감초산(글리사리진산)의 독성에 의해 콩팥이 붓거나 성기능 저하를 부르는 등의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한방도 고정된 과학이 아니라는 얘긴가요.
"그렇습니다. 향약집성방이나 동의보감도 500, 600년 전의 책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질도 많이 변했고, 신체 조건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습니다. 신토불이 관념도 마찬가집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그런 관념이 유행했지만 당시 상황의 산물일 뿐입니다. 수입 농산물의 홍수로부터 우리 농산물을 지키고, 우리 농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다른 논리의 개발을 서둘러야 합니다."
황영식 편집위원 yshwang@hk.co.kr
●약력
▲1941년 경기화성, 63세 ▲경희대 한의과 ▲경희대 한의과 석사,박사 ▲경희대 조교수,교수 ▲자생생명공학연구소장 ▲저서 '한국본초도감' '신동의보감 '한약포제학' '건강하게 삽시다' '약초' 등
■신토불이의 유래
'신토불이'란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89년 8월 우루과이라운드 타결을 앞두고 농협이 우리 농산물 애용 운동의 캐치프레이즈로 내걸면서부터. 그 후 식당 이름이나 음식물 이름 등에 널리 쓰일 정도로 유행어가 됐지만 농협이 이 말의 출전을 추적해 밝힌 것은 3년 뒤인 1992년이었다.
성서의 '창조주가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 동의보감(東醫寶鑑) 외형편(外形篇)의 '사람의 살이 땅의 흙과 같다',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서문의 '풀과 나무도 각각 제 습성에 맞는 지대(地帶)에서 나며, 사람의 식습관과 풍습도 각각 달라 습성에 맞는 약초로 병을 치료한다', 원(元) 나라 보도(普度) 법사의 '노산연종보감'(盧山連宗寶鑑)에 실린 '신토불이'라는 제목의 게송(偈頌)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종교적 담론인 성서의 내용은 적합한 근거가 되기 어렵다. 보도 법사의 게송 또한 '부처의 몸인 법성신(法性身)이 삼라만상에 의지해 이 세계에 그 모습을 나타내므로 이 세계는 부처의 빛이 그림자로 나타난 법성토(法性土)이자 정광토(淨光土)'라는 화엄 사상의 표현일 뿐 현재의 '신토불이'와는 인식의 차원이 다르다. 동의보감 외형편의 구절도 '사람의 살은 마치 땅의 흙과 같아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되며, 살이 다 빠지면 죽는다'는 내용으로 살(肉)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일 뿐이다.
그나마 향약집성방 서문이 현재의 '신토불이'에 가까운 인식을 드러낸다. '옛날부터 의학이 침체하고 약재를 제때에 캐지 못하며, 가까운 지방에서 생산되는 것을 소홀히 여기고 먼 지방의 것만을 구하려고 하여 사람이 병들면 반드시 구하기 어려운 중국 약재를 찾으니, 이는 어찌 7년 된 병에 3년 묵은 쑥을 구하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약재는 구하지 못하고 병세는 이미 어떻게 치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오직 민간의 나이 많은 노인이 한 가지 약초로 한 가지 병을 치료해 신통한 효험을 본다. 이는 토지의 성질에 알맞은 약초와 병이 서로 맞아서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향약집성방 서문에도 '신토불이'라는 말이 분명하게 씌어있지는 않다. 그 뜻은 여기에서 따고, 용어는 불교에서 가져와 조합한 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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