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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로의 언론보기]탐사보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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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로의 언론보기]탐사보도의 힘

입력
2004.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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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건이 씌워진 채 고문을 당하는 이라크 포로, 발가벗긴 포로들을 포개 쌓은 피라미드 곁에서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웃고 있는 린디 일병. 미국 CBS 방송의 간판 시사프로그램 '60분?'가 4월 28일 공개한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 사진에 담긴 충격적인 장면들이다.시사주간지 뉴요커가 이틀 후 미군의 비공개 보고서를 인용, 상세한 포로학대 실상을 보도했고, 15일에는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지난해 이라크 포로들에게 신체적 압박과 성적 수치심을 줌으로써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는 '특별접근계획'을 허용했다"고 폭로했다. 뉴스위크도 17일 백악관 법률고문이 2년 전 테러와의 전쟁에서 "비인간적 심문 방법을 사용할 경우 전범법(War Crimes Act) 위반으로 기소될 수 있다"고 경고한 내용을 입수해 알렸다.

이 기사들은 모두 관계자들이 감추고 싶은 심각한 문제를 마치 탐정이나 수사관처럼 장기간에 걸친 조사와 자료수집을 통해 밝혀내는 '탐사보도'(Investigative Journalism)의 전형이다. 특히 뉴요커의 시모어 허쉬 기자는 탐사전문으로 유명한데, 1969년 미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미라이 양민학살' 사건을 보도해 베트남 철군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탐사보도는 미국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감춰진 사실을 드러내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 71년 뉴욕타임스의 시한 기자가 1급 비밀문서를 입수, 미국의 베트남 정책결정이 부당하다는 내용을 연재하자 국방부는 보도중단을 요청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언론의 자유를 인정했고, 계속된 보도가 미군철수로 이어졌다.

72년 워싱턴포스트의 우드워드와 번스타인 기자는 익명의 제보자 도움으로 워터게이트 도청사건의 전모를 취재했다. 의회가 탄핵을 추진하자, 닉슨 대통령은 사임을 선택했다. 99년엔 AP통신 최상훈 기자가 노근리 사건을 보도했다. 400여명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은 50년 만에 진실을 확인했고, 전쟁역사가 새로 쓰여졌다.

국내 언론들도 이라크 포로학대사건을 대서특필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의 특파원은 '미국이 아직 얼마나 건강한지를 역설적으로 웅변한다'(중앙일보 11일자)든지 '자유언론 덕분에 미국이 후세인 시절의 이라크 보다 낫다'(조선일보 8일자)는 등 사태의 본질에서 벗어난 시각을 보여줬다. 자유언론이 긍정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정부와 군대의 잘못을 덮는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 언론도 탐사보도를 통해 민주화에 기여해온 자랑스러운 전통을 갖고 있다. 86년 '말'지가 김주언 당시 한국일보 기자의 자료를 제공받아 보도지침을 폭로한 일은 언론의 자유를 회복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또 동아일보의 박종철 고문 치사사건 보도를 비롯해 정치권의 부패와 정경유착을 밝힌 일련의 보도는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역할을 했다.

요즘 세상이 나라 안팎으로 어지럽다. 이럴 때일수록 언론의 탐사보도가 절실히 요구된다. 정치적 난제와 더불어 관심의 사각지대에서 고통 받는 소외층의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갈 탐사보도를 기대해본다.

이진로/영산대 매스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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