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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추미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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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추미애를 위하여

입력
2004.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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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았거나 출마해 낙선한 동료 의원들과 함께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다음 주에 국회를 떠난다. 아홉 석의 미니정당으로 졸아든 민주당처럼, 추 의원의 정치 행로도 가파른 고비를 맞았다. 누구보다도 앞길이 밝아보였던 여성 재선의원의 낙선에 그 자신만이 아니라 그의 지지자들도 마음이 아릴 것이다. 나 역시 추 의원의 낙선이 확정된 순간 잠시 마음에 그늘이 졌다.사실인즉 나는 지난 총선 때 지역구 후보 투표에서도 정당 투표에서도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만일 내가 사는 선거구에 추 의원이 출마했다면, 나는 지역구 후보 투표에서 적잖이 망설였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 소추 과정에서 그가 저질렀다고 판단된 잘못의 무게와 지난 8년간 국회에서 그가 보여준 진취적 실천의 무게를 견줘보느라 골머리가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망설임 끝에 설령 내가 추 의원 이름 옆에 기표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뭔가 찜찜함을 남겼을 것이다. 당 지도부에서의 위치가 그에게 허락한 공간이 넉넉지 않았으리라는 점을 고려해도 그가 탄핵 소추 과정에서 휘말려들게 된 과오는,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만큼 컸다.

그러나 그 잘못으로 거덜날 만큼 정치인 추미애의 이력이 시시한 것은 아니다. 지난 여덟 해 동안 추 의원은 그야말로 시시한 인간들로 그득 찬 대한민국 국회의 가장 빛나는 부분, 순금 부분에 속했다. 옛 국민회의 시절 제주 4·3사건 진상조사특위 부위원장을 맡아 4·3특별법 제정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인권을 비롯한 민주주의적 가치들에 일관되게 이끌린 그의 의정 활동의 한 대목일 뿐이다.

언론사 세무조사로 여권과 보수 언론계가 긴장 관계로 치달으면서 그의 많은 동료들이 언론의 해코지가 무서워 기회주의적 행태를 보였을 때, 추 의원은 단호히 탈세 과점 신문사에 맞섰다.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자당 후보를 끌어내리려는 분파주의적 난동이 민주당을 샐그러뜨렸을 때도 그는 어기차게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결국은 성공적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노골적인 영남 지역주의 영합이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유행처럼 번졌을 때 그는, 호남 지역주의자라는 욕을 먹어가며, 한국 사회에서 지역 대립은 일정하게 계층 갈등을 반영하고 있음을 명확히 했다.

지역주의와 관련해 그에게 쏟아진 비난은 총선 직전 그가 광주에서 3보1배를 했을 때 절정에 다다랐다. 나 역시 거기 호남 지역주의에 대한 호소의 측면이 분명히 있었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 호소는 호남 유권자들의 성난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설령 그것이 '쇼'였다 하더라도, 진정이 담긴 쇼였다고 생각한다. 추 의원의 그 참혹한 쇼는, 민주주의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의 비교적 작은 과오를 추궁하기 위해 파시스트의 상속자들과 극단적 방식으로 협력한 자신과 동료들의 큰 과오를 공개적으로 뉘우치는 참회의 의식(儀式)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참회의 의식을 1980년 5월 반파쇼 민중항쟁의 현장에서 치른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추 의원의 재기가 민주당 재건 프로젝트와 반드시 연결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민주당이 재건되든 미니정당으로 남든 아니면 이내 소멸하든, '50년 전통' 운운하는 흰소리가 이젠 더 이상 민주당에서 안 나왔으면 한다. 지금의 민주당이 제1공화국의 민주당을 계승하고 있다면,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다. 옛 민주당 구파의 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통해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으로 스며든 지 오래고, 파란곡절 끝에 그 신파의 맥을 현실적으로 잇고 있는 것은 이제 열린우리당이다. 게다가 그 민주당은 지금의 한나라당 못지 않은 반공지상주의적 유산자 정당이었다.

민주당의 운명과 상관 없이, 언젠가 추 의원이 정치 일선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그는 이대로 시들기에는 너무 아까운 정치인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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