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불이 가족아버지는 1929년 3월11일 경기 낙원군 행복면 행복리에서 태어났다. 키 117㎝, 몸무게 32㎏의 난쟁이. 채권 매매, 칼 갈기, 고층 건물 유리닦기 등을 전전했다. 40대 후반에 수도 수리공으로 나섰으나 별로 일거리를 얻지 못했다. 서커스단에 따라다닐까도 생각했지만 가족의 반대로 그만뒀다. 아파트 입주권을 팔고 이사하기 직전, 벽돌공장 굴뚝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2남 1녀. 일찌감치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에 다니던 큰 아들 영수는 노동운동을 하다 은강그룹 총수의 동생을 칼로 찔러 죽여 사형당했다. 막내인 딸 영희는 입주권을 산 투기업자에게 몸을 뺏기지만, 입주서류를 훔쳐 도망 나온다.
서울시는 1967년부터 시민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난립하는 무허가주택 양성화와 개량지원사업이 별 효과를 보지 못한 뒤다. 사업은 시가 아파트의 골조만 짓고, 입주자가 내부공사 일체를 맡는 방식이었다. 호응은 좋았지만 예산이 충분치 못했다. 실적 위주로 밀어부친 아파트 짓기는 와우아파트 붕괴(1970년)라는 대형사고를 낳았다. 더욱이 대다수 철거민은 입주권을 팔고 다른 곳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그 수가 전체 가구의 70%다.
달나라 천문대지기를 꿈꾸다
낙원구 행복동 46의 1839번지. 김불이(金不伊)는 철거지역 빈민이다. 40대 후반이지만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이는 이 수도 수리공은 더 이상 일거리를 찾지 못한다. 젊을 적엔 채권매매를 했다. 힘이 있고 담력 좋을 땐, 높은 빌딩의 유리창도 닦았다. 하지만 지금은 수도 사정이 나쁜 동네를 반나절 헤집고 다녀봐야 일감 얻기가 쉽지 않다. 남은 건 직접 짓고 수리해 살아온 무허가 주택 한 채뿐이다. 그 집이 헐릴 참이다.
그는 난쟁이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그랬듯, 옛적부터 그의 가계는 노비다. 조상이 상속·매매·기증·공출의 대상이었던 건 부인도 마찬가지다.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인쇄공장과 빵집에서 한 달 내내 벌어봐야 수입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친다. 집이 헐리면서 아파트 입주권이 나왔지만 돈이 유지비를 댈 수 없어 들어가 살 수 없다.
목숨 걸고 싸워 생계대책이라도 받아내라고 하기에, 20여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경기 성남 허허벌판에 판자집 짓고 다시 시작하라고 하기에 그는 너무 지쳤다. 평생 약자로 살아온 무거운 인생을 다시 어깨에 짊어지고 일어설 힘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달나라 천문대지기'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허황된 줄 몰랐을까? 그는 세상을 바꿀 수도 없고, 바뀌지도 않는다고 믿었다. 희망의 나라는 지구 바깥 멀리 있는 딴 세상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자본과의 싸움이 시작되다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한 세대 가까이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젊은이들은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연극이 끊임 없이 무대에 올랐고, 1981년 영화는 관객을 울렸다. 대립적인 세계관을 부각한 효과는 놀랄만한 것이었다. 도시빈민 김불이 가족을 별로 과장할 것 없이 묘사한 것만으로 소설은 쉽게 인화점에 도달했다. 그들은 70년대 도시재개발과 산업화의 상징이었기 때문일까?
김불이가 재개발로 생활의 터전은 물론 삶의 의지마저 잃는 1세대 도시빈민을 대표한다면, 그의 장남 영수는 개발독재시절 노동 현실을 증거하는 인물이다. 중학교 3학년을 중퇴한 영수는 인쇄소 공무부 조역으로 취업했다. 하지만 그는 공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고입검정고시를 거쳐 방송통신고교에 입학했고, 인쇄물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풋사랑 명희의 가슴을 훔칠 때 했던 "열심히 공부해서 저 공장에 다니지 않는다"고 한 약속을 잊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사형수가 되었다. '사랑 없이 욕망'만 있는 '끔찍할 정도로 미개한 사회'를 교정하기 위해 그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아버지는 법률로 정해서라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안겨야 한다고 했지만, 영수는 교육으로 고귀한 사랑을 갖자고 한 온건한 청년이었다. 청년 노동자는 탐욕스런 자본가에게 칼을 겨눴다. '열심히 일하고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잃은' 그는 말년의 아버지보다 훨씬 지독하게 세상에 앙심을 품었다. 천민의 가계보다, 신체의 결함보다, 노동이라는 굴레가 더 혹독했기 때문일까?
끝나지 않은 난쟁이 가족의 꿈과 사랑
벽돌공장 밑에 닥지닥지 붙은 주택들 중 하나가 난쟁이 가족의 집이었다. 집 앞에 방죽이 있고, 개천이 흐른다. 동네에는 늘 냄새가 난다. 개천 건너 동네는 반듯한 주택가다. 그곳에는 공직기강 확립 기간이면 가재도구를 지하실로 숨기는 세무서 직원 집이 있다. 개천에 다리를 놓고 도로를 포장하고 무허가주택을 양성화시켜주겠다고 머리 조아리는 금배지 후보도 있고, 몰래 모여 유신헌법을 만드는 율사도 있다.
그 골목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바람을 타고 개천을 건너 온다. "엄마, 이게 무슨 냄새야?" "너도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집에 살 수 있고, 고기도 날마다 먹을 수 있단다." "엄마, 큰 오빠가 몰래 또 고기 냄새 맡으러 갔어."
아버지와 영수의 소망은 단순했다. 하지만 그조차 이루지 못했다. 지난해 상도동에서 재개발 지역 주민이 목숨을 걸고 입주권을 다퉜다. 불황이 노동자들의 숨통을 옥죈다. 김불이 가족은 지금도 참담한 우리시대 슬픈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작가는 '난쏘공' 이야기를 더 이어 쓰지 않았지만, 그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그때 한국일보에는
문학과지성사는 1978년 6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초판을 내고 그 해 말 11판을 찍었다. 6개월 만에 10만부 판매는 당시 일대 사건이었다.
그 해 문화계 결산에서 한국일보는 '조세희씨의 소설은 시제와 관점이 중첩되고 변화하는 난해한 기법이 구사된 것이지만, 현실의 모습을 극명하게 나타냈다는 점에서 새로운 리얼리즘으로 각광 받았다'(12월21일자)고 썼다.
10년 뒤 '난쏘공'은 한국일보 '명작의 무대―문학기행'의 57번째 작품이 됐다. '행복동의 모습은 중랑천이 흐르고 있는 면목동과 지금은 모악연립주택이 있는 모악동 일대를 모자이크해 놓은 풍경이다. …이 소설은 출간된 이후 40판을 거듭하면서 장기 베스트셀러의 위치를 굳혀왔다. 이는 어느 계층이 읽기에도 편하지 않은 이 소설이 오히려 노동자들을 포함한 여러 계층의 쓰린 부분을 날카롭되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지는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88년 10월21일자)
■"강남은 인위적 공간 특권적 계층의 城으로 자리잡아"
도시재개발로 철거되면서 나온 김불이 가족의 아파트 입주권을 25만원에 선뜻 사들인 '남자'가 있다. 29세의 이 부동산업자는 서울 시내 재개발지구의 아파트를 거의 몰아 사다시피 했다. 살고 있는 영동에도 가진 땅이 많다.
"지난 30∼40년간 전개된 자본주의적 근대화는 지배와 권력관계를 만들어냈고 서울은 그것을 담아내는 도시가 되었지만, 서울에서 그러한 변화는 특히 강남이라는 새로운 공간의 창출을 통해 실현되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최근 계간 황해문화 봄 호 '신상류층의 방주로서의 강남'에서 "강남 발전의 초석은 1970년대에 추진되었던 세계 초유의 대규모 구획정리사업"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업으로 도시빈민들이 서울 변두리로, 인근 경기도로 쫓겨나는 사이 "건설 붐과 부동산 투기, 아파트 주거문화 확산 등과 함께 강남은 신상류층과 중산층의 특권적 거주지역으로 자리잡았다"는 해석이다. 그래서 강남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창출된 사회적 공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는 자본가 계급과 중간계급(전문직과 경영·관리직)을 합친 '신상류층'이 서울을 5개 권역으로 나누었을 때 강남에 23.3%로 가장 많다고 지적했다. 최저인 도심(11.9%)의 2배다.
강남·서초·송파구에는 이른바 파워엘리트에 해당하는 법조인이 61.3%, 의료인 56.4%, 기업인 54.0%, 금융인 52.8%, 공무원 50.2%가 산다. 압구정1동에는 서울 평균치의 17.5배, 반포본동에 10.7배, 잠실7동에 10.4배의 파워엘리트가 몰려 살아 계층 편중이 확연하다.
'난쏘공' 가족이 가난을 등짐지고, 서울 외곽으로 밀려나는 동안 강남이라는 '성'은 더욱 단단해졌다. 조 교수는 "강남이 한국경제의 선도부문을 차지하는 측면은 분명히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육성되어야 한다"면서도 "부와 기회의 편중을 최소화하면서 계층위화적인 소비를 건강한 공동체적 소비로 바꾸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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