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그린스펀(78·사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FRB 차기의장에 재지명됐다. 이미 예견된 일이지만 세계는 다시 한번 그에게 주목하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 실력자인 그린스펀 의장은 제럴드 포드 대통령 재임기간인 1974∼77년 대통령 산하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지내면서 국제무대에 얼굴을 알렸다. 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FRB 의장에 첫 지명된 그는 조지 부시,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이어 이번까지 무려 4명의 대통령으로부터 의장으로 재지명돼 명실상부한 경제 수장으로 인정받았다.
지금까지 17년째 의장직을 수행해 오고 있는 그는 예정대로 새로 4년 임기를 마치면 20년 재임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는 해리 투르먼 전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 뒤 리처드 닉슨 정권까지 19년 간 재임한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의 최장수 기록도 갈아치우는 것이다.
현 정권 출범 이후 영향력이 예전같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두차례의 경기침체와 90년대 말 아시아 환란 등을 성공적으로 극복해 그에 대한 정치권과 경제계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경제대통령'이라는 칭호가 무색하지 않은 그에 대한 평가는 정치권의 간섭에 저항하면서 철저히 원칙을 지킨 고집스러움에서 비롯된다.
92년 대선 전 재선이 위태롭던 부시 대통령이 통화량 확대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고, 93년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클린턴 대통령의 요구도 거부했다. 96년 대선 때는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통화량 확대를 요구한 클린턴 대통령에게 경기가 과열된 상태에서 통화량을 확대할 수 없다고 역시 거절했다. '그린스펀 효과'라는 말은 소신과 고집스러움, 철저함이 바탕이 된 그의 경제적 위상을 말해주는 단적인 예이다.
96년 12월 활황세였던 미국 증시를 "비이성적"이라고 해 폭락사태를 유발한 것은 그의 영향력을 짐작케 하는 한 사례에 불과하다. 지금도 독특한 화법으로 표현되는 경제에 대한 그의 말 한마디, 뉘앙스 차이에 따라 세계 증시가 출렁인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 참모들이 작성한 보고서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자료를 챙기는 일벌레로도 유명하다.
26년 뉴욕에서 출생한 그는 뉴욕대 경제학과를 거쳐 콜롬비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97년 70세의 나이에 미국 3대 공중파 방송국 중 하나인 NBC 방송의 기자였던 당시 52세의 안드레이야 미첼과 결혼하면서 12년 간에 걸친 열애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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