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한미군 감축과 관련해 관심을 모으고 있는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GPR)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공개됐다. 정부 당국자는 19일 지난해 2월 한미미래동맹정책구상회의에서 미국측이 설명한 GPR을 소개했다.2001년 미 국방부의 4년주기 '국방보고서(QDR)'로 초안이 잡히고, 지난해 11월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발표한 GPR계획은 9·11 테러 이후 국제 테러리즘, 대량살상무기(WMD) 등 새로운 위협을 맞아 전세계 미군을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전략은 동맹의 효율화 불확실성 대비를 위한 유연성 개발 지역내 및 지역간 활동강화 유사시 신속한 동맹국 지원능력 확보 병력이나 기지 수보다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 등 5가지다.
문제는 이 계획에 따라 한반도를 포함, 전통적 의미의 미군 기지(base) 개념이 4가지로 분화했다는 것이다. 지역안보에 연연하지 않고, 세계적인 전력운용계획에 따라 기지들을 특화하고, 차등화 한다는 게 골자다. 그리고 올해 2월 미측 관계자는 정부측에 주한미군 기지가 1급∼2급 사이, 또는 2급 기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완곡하지만 결국 "1급 기지는 아니다"는 통보다.
각급 기지의 개념은 1급인 '전력투사근거지(PPH)'가 대규모 장비와 병력의 전개 근거지 2급 '주요작전기지(MOB)'는 대규모 병력이 장기적으로 주둔하는 상설기지 3급 '전진작전거점(FOB)'은 소규모 단위부대의 주둔시설, 마지막 '안보협력대상지역(CSL)'은 연락요원만이 상주하는 기지로 정리됐다.
회의 참석자에 따르면 PPH는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전력의 '허브'로 괌과 하와이 등 미국 영토나 영국 정도가 포함된다. 이라크 전 이후에는 괌의 대안이나 보완 개념으로 일본의 미군기지도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주한미군이 2급인 MOB로 낙착될 경우, 병력이 감축되면서 유사시 일본 또는 괌에서 전력을 투사(投射) 받는 체계가 갖춰진다. 2급인 주한미군은 작전부대, 1급인 일본이나 괌의 미군은 주력 전략부대로 운용돼 양군이 지휘체계에서 상하관계를 형성할 것이라는 관측도 일각에선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이를 강력히 반박했다. 병력 감축 후에도 한반도에 2만명 규모의 전력이 주둔할 것인 만큼, 주일·주한 미군이 '상하관계'가 아니라 병렬적인 '분담관계'에 놓일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주한미군의 위상이 매우 유동적이고 앞으로 한미간 협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자주국방 탄력…비용 부담 클 듯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이 급격히 현실화하면서 참여정부의 국가안보 전략 기조인 자주국방 로드맵의 시행은 가속이 붙게 됐다. 정부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8·15 경축사를 통해 "향후 10년 이내에 자주국방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는 비전을 제시한 데 맞춰 자주국방계획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주한미군 2사단의 이라크 차출이라는 변수로 주한미군 감축논의가 예상보다 앞당겨지면서 자주국방 로드맵에 탄력이 붙게 된 것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자주국방 로드맵의 핵심은 미군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인 대북 억지력 확보와 이를 위한 첨단 정예군 육성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정찰위성 및 공중조기경보통제기 확보와 장거리 정밀타격에 대한 방어전력 증대에 무게를 두면서 지상전력과 해상전력의 보강도 병행하는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뀐 만큼 단기적으로는 자주국방의 여러 과제 중 미2사단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육군 지상전력 강화계획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2사단 1개 여단을 대체할 병력으로 꼽히는 7군단(소위 기동군단) 예하 기계화사단의 병력 증원과 장비 및 화력 증강 조치가 우선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이밖에도 국방부는 내년 신규사업 착수 목록에 최소 500억원 이상이 소요되는 탄약운반차량 장갑화 사업과 경비 수백억원대의 기갑여단개편사업을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미 2사단 공백을 땜질하는 식의 '대증요법'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공백이 생긴 전방방위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면 육군 중심의 전력증강 논리가 지나치게 조명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자주국방 로드맵 추진을 위한 예산확보 논란도 다시 불붙을 전망이다. 국방부 산하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자주국방 실현을 위한 비용을 2010년까지 약 64조원, 2020년까지 약 209조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과대평가됐다는 지적도 있지만 약 140억 달러(약 16조원)에 달하는 주한미군의 보유 장비 및 물자 가치 중 상당 부분을 우리 군이 새로 떠맡아야 하는 만큼 국방비 증액논리가 힘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호기자 azure@hk.co.kr
■월포위츠, 재배치 강조 교대기간도 단축 방침/日엔 복귀 약속
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은 18일 주한 미군 일부의 이라크 차출과 관련, "우리는 주한 미군의 일정한 감축을 계획했었다"며 이번 차출이 궁극적으로 주한 미군 감축으로 이어질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월포위츠 부장관은 이날 상원 외교위 이라크 정책 청문회에 출석, 미 2사단 3,600여명의 이라크 이동이 계획된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밝히고 미군의 세계 전력 재조정과 한국 근무 교대 기간 단축 필요성 등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먼저 "우리는 미군의 세계 전력의 전반적 재조정 계획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전력 태세를 일정 부분 적응시켜왔다"고 말했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미군을 빼는 대신 100억 달러 이상 규모의 전력 증강을 꾀하는 것은 한국 내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전력 태세 적응을 위한 양 방향의 변화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특히 DMZ내 미군 주둔에 대해 "쓸모 없고 역 효과를 내는 인계철선 기능 뿐"이라며 더 이상 전방에 미군을 주둔시킬 생각이 없음을 강하게 내비쳤다.
그는 이어 주한 미군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이유로 들었다. 대부분 가족 없이 단독 근무하는 데다 근무 교대도 1년 단위로 이뤄져 병력 운용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피터 슈마커 육군 참모총장도 최근 "주한미군의 교대 기간을 6개월로 단축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월포위츠 부장관이 마지막으로 거론한 사유가 이라크 상황이다. 그는 "이라크에 1개 여단이 필요하고 한국에 있는 여단이 이상적으로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라크 전황 악화로 1개 여단 규모의 병력 추가 투입이 필요한 상황에서 전 세계 미군의 가동성을 따져본 결과 주한 미 2사단 2여단이 가장 적합했다는 설명이다.
그의 설명을 종합하면 예정된 수순에 현실적 필요가 맞아 내려진 결정으로 해석된다. '다급한 이라크 사정에 따른 시급한 결정'이라는 우리 정부의 설명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처럼 예정된 수순에 따른 이동이라면 복귀 가능성도 그 만큼 낮다는 게 워싱턴 군사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미국은 3월 오키나와 주둔 해병대의 이라크 투입 결정 시 일본 정부에 상황 종료 후 복귀를 약속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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