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계전략을 밀도있게 비판한 석학의 저서들이 잇따라 번역 출간되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출간된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미국 패권의 몰락'(창비 발행)과 슬라보예 지젝의 '이라크'(도서출판 b)는 매우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두 저자는 유일 강대국 미국이 거침없이, 그리고 무리하게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세계 변혁을 위한 중대한 시기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한다.'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정치경제학자 월러스틴은 세계자본주의체제의 변화라는 거시적 맥락에서 미국의 쇠퇴를 이야기한다. 그에 따르면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승리하면서 헤게모니 국가로 자리잡는 그 순간 미국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쇠퇴의 결정적인 순간들은 베트남전쟁, 1968년 혁명, 공산주의의 붕괴, 그리고 9·11 테러. 제3세계와 전세계 민중의 저항, 적의 붕괴를 맞으며 미국은 끊임없이 도전 받았고, 정당성을 잃어왔다.
그는 콘트라티예프 경기순환 주기 등 경제학적인 분석을 통해 향후 50년 안에 세계는 중대한 변혁의 계기를 맞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명쾌한 대안은 없지만 반세계화와 저항운동을 위한 세계적인 모임인 '세계사회포럼'을 대안 중의 하나로 거론했다.
월러스틴이 검토하고 있는 주제는 다양하지만 그 내용은 한가지로 모아진다.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역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며 더 나은 체제, 좀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체제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혼신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 교수이며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철학자·문화비평가인 슬라보예 지젝은 미국의 대표적 신보수주의 이론가 윌리엄 크리스톨과 로런스 카플란의 책 '대 이라크 전쟁'의 한 대목에 동의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임무는 바그다드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시기의 선두에 서 있다.'
물론 지젝이 설정하는 문제의 실체는 그들과 전혀 다르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국제 공동체의 미래이며, 그것을 규제할 새로운 규칙들이며, 새로운 세계 질서가 어떠한 것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젝은 미국이 안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제국인 척 하면서 '무자비하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민족국가'로 행동하는 데서 찾았다. 그는 미국 정치의 지침을 생태주의자들의 구호처럼 '세계적으로 행동하고 국지적으로 사고하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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