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명 휴대폰 제조업체의 연구원들이 외국 휴대폰 판매업체로부터 거액을 받고 206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최첨단 휴대폰 제조기술을 유출했다 적발됐다. 이 기술은 다행히 검찰과 국가정보원의 신속한 대처로 해외로 유출되진 않았지만 국내업체는 하마터면 연간 1조5,000억원의 수출 피해를 볼 뻔했다. 외국자본에 의한 기술유출 시도가 드러나긴 이번이 처음으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술에 대한 보안체계 강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거액 제시에 신의는 뒷전
홍콩의 휴대폰 판매업체인 Q사의 한국법인인 Q코리아 부사장 조모(35·구속)씨는 지난해 1월 국내 유명 휴대폰 제조업체 A사의 해외영업담당 사원 김모(35·구속)씨에게 접근, "우리끼리 휴대폰을 만들어 보자"며 기술진 소개를 부탁했다. 조씨는 김씨를 통해 A사 연구팀장 양모(32·구속)씨를 소개받아 고액의 연봉과 별도의 스카우트비(1억2,000만원), 상장시 스톡옵션 조건 등을 제시하며 기술 유출 및 후배 기술진 스카우트를 제안했다.
1997년 A사에 입사, 회사 지원으로 박사 학위까지 딴 양씨였지만 거액의 '당근' 앞에서 신의는 뒷전이었다. 양씨는 이때부터 지난해 8월까지 부하 연구원 5명과 차례로 접촉, 5,000만∼6,000만원의 스카우트비와 3,600만∼4,000만원의 연봉, 스톡옵션 조건 등을 제시하며 기술 유출 및 이직 동의를 받아냈다. 이후 연구원들은 양씨가 조씨로부터 받아 건네준 하드디스크에 각자 담당한 기술을 담은 뒤 회사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지난해 9∼11월 순차적으로 퇴사했다.
유출 기술 A4 용지 100만장 분량
이들이 유출한 'LCD 구동 소스 프로그램' 등은 세계 휴대폰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최첨단 GSM방식(유럽방식) 휴대폰 기술로, 컴퓨터 파일만 7만5,000개에 A4용지 100만장 분량에 달했다. A사는 206억원의 연구비를 들인 이 기술로 지난해 5개의 수출용 휴대폰 모델을 개발중이었다.
퇴사후 Q사 한국법인의 연구소 격인 C사에 입사한 조씨와 연구원들은 유출 기술로 자체 휴대폰을 만들려 했지만 원천기술 결함으로 실패하자 지난 4월 외국의 D사, K사 등에 기술을 판매하려다 적발됐다. 수사결과 홍콩의 Q사는 스카우트와 연구소 운영 등 전 과정에 쓰인 11억원 전액을 지원했다.
이들의 범행은 A사의 신고를 받은 국정원 산업보안팀이 검찰에 통보하면서 밝혀졌다. A사측은 "한국보다 기술 수준이 2,3년 뒤진 외국으로 이 기술이 유출됐다면 6개월내에 동종 모델 출시가 이뤄졌을 것"이라며 "하마터면 3년간 4조5,000억원 규모의 수출피해가 발생할 뻔 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컴퓨터수사부(이창세 부장검사)는 19일 휴대폰 기술 유출에 가담한 8명을 적발, 이중 조씨와 양씨 등 5명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과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연구원 중 3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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