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화(48)는 열정의 배우다. 그가 서는 무대 위엔 늘 고압의 전기가 흐르고, 그가 있는 주위엔 팽팽한 긴장이 흐른다. 고압의 전기도, 팽팽한 긴장도 모두 열정에서 나온다. 그를 기다리던 관객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뮤지컬 '넌센스' 이후 3년 만에 윤석화가 무대에 선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와 '토요일 밤의 열기'다. 늦가을에는 연극 '위트'로도 관객과 만난다.
배우는 다른 이의 영혼을 연주하는 악기
자신이 직접 연출과 조연을 맡은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 연습장. 의자에 앉아 배우들의 동작을 지시하고, 비지스의 '나이트 피버' 선율에 맞춰 배우의 춤사위도 따라 했다. "발 끝에 힘을 줘. 내가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보여."
홍콩에 갔다가 전날 밤 서울에 도착, 손숙씨의 회갑연 참석과 뮤지컬 연습 등으로 세 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는 게 거짓말처럼 들린다. 스승의 날을 맞아 후배 단원들이 선물한 흰 두건을 둘러쓴 연습복 차림. 즐거워 보였다. "못 한다고 배우들을 야단치지만 며칠 새 이렇게 늘었나 싶어 대견스러워요."
엄마로, 아내로, 배우로, 연출가로, 월간 객석 발행인으로 사는 몇 사람 몫의 삶이 무거워 보이지 않는다. 바닥을 모르는 열정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는 죽을 때까지 결코 미리 죽지 않겠다'는 프랑스 배우 사라 베른하르트의 말이 제 좌우명이죠. 죽도록 뭔가에 달려들면 죽기는커녕 다시 살게 되요." 윤석화의 말은 훌륭한 연극 대사처럼 들렸다. "배우는 자신의 악기로 늘 다른 사람의 혼을 연주하는 사람입니다."
3년만의 무대, 두렵지만 설렌다
윤석화가 오를 무대는 5월29일부터 8월15일까지 팝콘하우스에서 열리는 '브로드웨이 42번가', 7월17일부터 8월3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토요일 밤의 열기'다. 그러나 그는 주연이 아니다. 세월의 물살을 이제 거스르지 못하는 것일까. 후배에 대한 배려라고 했다.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페기에게 주연 자리를 내주는 도로시와, 김미혜에게 페기 역을 내주는 저나 다를 게 없어요. 저도 이젠 후배에게 자리를 내줘야죠. '맘마미아'에서 주연을 한 배해선에게 '토요일 밤의 열기'의 주인공 스테파니 역을 준 것도 해선이가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제가 스테파니를 하면 너무 뻔해서 재미도 없어요. 저는 연출을 하고 있으니 중심을 잡고 있어야죠."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도로시는 뮤지컬 스타로 발목 부상을 당해 페기에게 주연 자리를 내주는 여인이다.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그가 맡은 아네트는 남자 주인공 토니를 짝사랑하는 여인. "토니에게 차일 생각을 하니 끔찍해요. 저보다 훨씬 어린 아네트 역을 맡아 두렵기도 하지만 그게 배우입니다. 브로드웨이에선 40대 후반의 노련한 배우들이 20대 역을 맡아요." 당당한 자신감과 함께 그는 겸손함도 보여줬다. "제 한계가 드러나 질책을 들으면 '회개'하고 또 다른 준비를 해야죠."
'신의 아그네스'공연 사진과 아들 사진이 걸린 그의 사무실에서 자장면을 시켰다. 임박한 공연 때문에 너무 긴장한 탓일까. 반도 채 비우지 못한다. "연습할 때는 전혀 못 먹어요. 연습 끝나고 집에 가서 무지 먹죠." 늦가을엔 번역극 '위트'(Wit)의 주연으로 나선다. 난소암 말기인 40대 영문학과 교수 역이다. "시어머니가 위중하던 때 작품을 읽었어요.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이 느꼈어요. 생사의 문제를 위트 있게 담은 작품이죠."
그는 왜 이렇게 어려운 작품을 골랐을까 후회한 적이 많다고 했다. "매 작품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와 '할 수 있다' 사이에서 고통을 받지만 꿈을 포기한 적은 없어요. 관객을 만날 생각에 이내 설렙니다." 왜 아니겠는가. 3년 만에 춤과 노래와 연기와 영혼을 연주하는 악기를 기다리는 관객에게도 그럴 것이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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