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은 한국 경제의 유일한 희망이다. 내수경기 장기침체와 금융시장 악화라는 어두운 소식 중에도 우리 경제를 감히 낙관할 수 있는 까닭은 세계 10대 무역대국을 꿈꾸는 수출의 힘이 여전한 덕분이다. 비록 반도체·휴대폰·자동차 등에 대한 의존이 높지만, 이들의 화려한 성과 뒤에는 오래도록 한국 상품의 명성을 지켜온 숨은 '수출효자상품' 들이 있다. 기술과 신뢰로 지구촌 시장을 석권해온 '코리아 일류상품'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1980년대만 해도 국산 손톱깎이는 '기본 없는 공업입국'의 상징으로 통했다. 손톱을 '뜯어먹는' 열악한 품질이 신문 지상에 질타 당했고, '손톱깎이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드는 나라'의 자괴감만 안겨주기 일쑤였다. 그때는 국산 손톱깎이 10개들이 한 상자 값이 미국산 '트림'(Trim) 하나 가격과 맞먹었으니, 품질에 대한 불신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20여년이 지난 오늘날 국산 손톱깎이의 세계시장점유율은 약 70% 내외로, 세계 최고 자리에 올랐다. 중국에서는 현지 업체가 만든 손톱깎이보다 5∼10배 정도 비싼 가격에 팔린다. 독자 브랜드와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 수출이 반반정도로 연간 수출액은 1억 달러(1,200억원)에 이른다. 손톱깎이의 완성도가 한 나라의 공업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면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셈이다.
손톱깎이 제조 공정에는 자동차나 항공기 부품을 제작하는데 응용되는 정밀 금속 기술이 총동원된다. 주재료는 철에 니켈, 주석 등이 섞인 강철 합금으로, 녹이 슬지 않도록 도금을 하지만 최근에는 스테인리스 제품들도 선보이고 있다. 아래위 두 부분으로 이뤄진 몸통은 수백만번의 반복 동작에도 탄성을 잃지 않도록 유연한 성질을 지니는 한편, 머리쪽 날이 있는 부분은 쉬 물러지지 않으면서 항상 아래위 이빨이 정확히 맞물리도록 정교하면서도 높은 경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속 주물과 단조, 열처리 등 고기능 절삭도구를 만들 때 쓰는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업체마다 절대 공개할 수 없는 제조 비결이 있다"며 "중국이나 동남아 업체들이 호시탐탐 기술 유출을 노리고 있어 일부 업체들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묵은 손톱을 경쾌하게 잘라내는 손톱깎이의 날 끝에는 축적된 '손톱깎이의 과학'이 있다는 얘기다.
쓰리세븐, 벨금속공업, 코웰산업 등이 대표적인 손톱깎이 전문기업이다. 시장점유율 40% 내외로 세계 1위를 고수 중인 쓰리쎄븐은 연간 8,000만개의 손톱깎이를 만들어 92개국에 수출하고 있으며 지난해 30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다. 벨금속공업이 그 뒤를 이어 30% 후반대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코웰산업은 스테인리스 재질의 다기능 손톱깎이로 주머니 공구로 유명한 스위스 업체들과 경쟁하고 있다. 평균단가는 1,000원 미만이지만 한국상품의 지명도로는 휴대폰이나 자동차보다도 낫다.
손톱깎이에도 명품이 있다. 일본 스와다(Suwada)가 생산하는 '네일 니퍼'는 개당 수십만원을 호가한다. 업계는 "국산 손톱깎이 산업이 수출 효자 상품으로 계속 남으려면 시장 점유율로 대표되는 수적 우위보다 품질과 브랜드를 계속 육성해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