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국론 분열을 국가적인 낭비로 보는 견해가 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힘들게 돌아가던 국가라는 기계마저 일시적으로나마 멈춰 섰기 때문이다.그러나 보기에 따라서는 현 정부 집권 이래 이번 탄핵만큼 생산적인 경우도 드물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을 통해 국민과 정치인 모두가 착잡한 가운데서도 스스로를 교육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국가의 최고 지도자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며, 불법이나 비리가 아닌 독선이나 교만도 때로는 탄핵의 사유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교육에는 비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무지는 더욱 더 큰 비용이 뒤따른다.
그래서 이번 탄핵 사건이 단순한 국가적 낭비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문제가 된 대통령의 언행이 앞으로는 신중해질 때 장차 더 큰 낭비와 국가적 손실을 방지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 어찌 알 것인가? 우리의 고질적인 건망증 때문에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지를? 기각이 망각으로 이어질지를? 순식간에 얻은 것은 대개 순식간에 잃게 되지 않는가? 현대사회에 있어 교육의 확대는 책을 못 읽는 문맹을 줄이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가치 있는 책을 읽는 인구를 생산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으니 이것을 교육의 발전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문맹과 문명의 차이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좋게 생각해서, 교육이란 철학자 헤겔의 말처럼 "인간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예술"이라 할 때 이번 탄핵 과정을 통해 당사자인 대통령에서부터 국민에 이르기까지 법보다 우월한 도덕에 좀더 근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도덕적인 면에서 볼 때 우리는 어떤 정치인을 원하는가? 고대 희랍의 칠현 가운데 하나로 불리는 피타쿠스는 적군을 물리친 후 시민들이 땅을 가지라고 요청하자 들고 있던 창을 던져 그것이 떨어진 만큼의 땅을 갖겠다고 말했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인 푸불리우스 역시 자기가 하루 동안 쟁기로 갈 수 있는 밭만을 보상으로 받겠다고 했는데 그는 절름발이였다. 정치가가 보여줄 수 있는 명예와 도덕성은 이런 것이 아닐는지?
정치가가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들도 고대 박트리아인들이 메난더 왕이 죽자 서로 그의 잿가루를 차지하고자 다툰 것처럼, 페르시아 사람들이 사이러스 왕이 매부리코라는 이유로 매부리코인 것을 최고의 미남으로 여긴 것처럼 될 것이다.
/최병현 호남대 영문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