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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여성생활수기 우수작 장화자/내 삶의 새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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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여성생활수기 우수작 장화자/내 삶의 새 봄

입력
2004.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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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거리는 봄바람에 모두들 들떠 있을 무렵, 나는 옷장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죽으러 가는 것처럼 왜 이래?"

단골 세탁소 아줌마가 측은하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한다.

어디다 내 놓을 인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마디는 해야 할 것 같아 유서도 썼다. 15년을 같이 살아 준 남편께 도리가 아닌 줄 알지만 다른 여자 만나 남은 인생 행복하게 살라고 부탁의 말을 남겼다. 그리고 나 같은 여자를 많이 사랑해 주고 같이 살아줘서 너무 고맙고 행복했다고.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

"우리 심장에는 판막이 4개 있습니다. 환자의 경우엔 3개의 판막이 제 기능을 하지 못 하는 경우입니다. 한꺼번에 3개의 판막을 수술할 수 있을지…. 외과 의사와 상의해 보시죠."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이다.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하면서 걸음을 옮겨 놓을 수 조차 없었다.

내 삶의 기억은 언제나 슬픔으로 시작 된다. 밝고 고운 웃음소리는 다섯 살을 끝으로 사라진 것 같다. 아버지는 딴 살림을 차리셨다. 언니는 초등학생, 오빠는 병중이었다. 살기가 버거워진 엄마는 나를 늘 아버지 집에 보냈다. 그 곳의 엄마는 참으로 혹독했다. 어느 날 모진 매질에 난 기절을 했다. 그 후로 나는 병마와 싸워야 했다. 초등학생 때 심장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엄마는 절망했다. 심장병으로 아홉 살 아들을 먼저 보내고 통곡하던 엄마를 종종 보아오던 터라 어린 마음에도 엄마의 아픔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엄마는 내 나이 21살에 어린 자식들만 남겨 둔 채 거짓말처럼 우리 곁을 떠나셨다. 그 무렵 아버지도 시름시름 아팠다. 역시 폐암 판정을 받으시고 한 달 가까이 고통 속에 사시다 엄마 뒤를 따라 가셨다.

두 분의 죽음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고 말았다. 동생들의 보호자가 되어 3년을 살고 나니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서울올림픽이 있던 1988년. 심장의 승모판막 1개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갓 중학생이 되는 막내 여동생과 고등학생이 되는 남동생을 두고 차마 죽을 수 없어 이를 악물고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의 후유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그 때 이미 가정을 이룬 상태였고 심한 갈등이 시작됐다. 남편과 갈라설 결심을 하고 무작정 동생들이 있는 서울로 올라왔다. 다른 여자 만나 아들 딸 낳고 잘 살아 보라고 자리를 비켜 주고 왔는데 남편은 사업을 정리해서 나를 따라왔다. 많은 고민 끝에 남편과 다시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내 몸 속에서 이렇게 큰 일이 일어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외과선생님과 면담이 있던 날. 한번도 내 병원 길에 동행해 주지 않던 남편도 따라 나섰다. 떨리는 마음으로 앞에 앉으니 "빨리 수술합시다"라고 말씀하신다. 난 귀를 의심했다. "정말로 저 수술 할 수 있어요?" "3개를 다 못 하면 2개라도 해야죠."

4월10일. 수술을 받는 날이다. 수술 전날 언니와 동생들 그리고 친척분들, 이웃 사람들, 친구들이 찾아왔다. 그들이 갈 때마다 엘리베이터까지 나가 웃으며 배웅했다. 어쩌면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르기에.

꼬박 하루 만에 눈을 떴다. 심한 갈증과 고통 때문에 눈을 뜨니 푸른 옷을 입은 간호사가 다가와 내 이름을 부른다. 이곳이 지옥은 아니구나! 목에는 굵은 호스가 꽂혀있고 온 몸은 기계들로 결박해 놓은 것 같았다

수술 후 17일째가 되던 날 병원 식구들 환송을 받으며 집에 왔다. 시골에 계신 시어머님은 서울에 혼자 있지 말고 시골로 오라고 성화셨다. 의사와 상의해서 비행기를 탔다. 시어머님과 시누이들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하루하루 원기를 회복했다.

몸이 나아지면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다른 건 몰라도 공부는 꼭 해보고 싶다.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몸으로 남을 도울 수 없으니 마음으로 줄 수 있는 길을 찾으려면 꼭 공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세월이 거듭 될수록 사람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잘 다듬어진 사람을 만나는 귀하기 때문이리라.> 장성숙의 '무엇이 사람보다 소중하리'의 한 대목이다. 나도 많은 어려움과 고통을 겪으면서 이제야 인간의 모습을 막 갖추는 것 같다. 아팠기에 아픈 사람 마음도 헤아릴 수 있고 슬펐기에 슬픈 사람 마음도 다독여 줄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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