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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개혁, 목적부터 밝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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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개혁, 목적부터 밝혀라

입력
2004.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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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의외로 역설적 상황에 부딪히는 때가 많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든지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역설적인 말에는 교훈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소비자 주권을 표방하는 시장의 역설 상황은 교훈적이지도 않고 황당함만 안겨준다. "소비자는 왕"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소비자가 봉"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허나 역설이 현실인 것을 어쩌겠는가.이 역설 가운데 민주적 정치 영역도 빼놓을 수 없다. 시민은 4년에 한 번 혹은 5년에 한 번 자유로울 뿐이다. 선거날 표를 찍고 집에 돌아가 출구조사를 보면서 누가 이길지를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결과가 나오고 나면 나머지 기간 동안 생업에 종사하면서 내가 선택하거나 반대한 대표들이 통치행위를 하는 것을 지켜볼 뿐이다. 이처럼 맥 빠지고 창백한 유형의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이 주인의식을 느낄 수 있을까. 참여민주주의나 토론민주주의가 활성화된다고 해도 이 사실이 크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은 흔히 민주권력이 위임받은, 봉사하는 권력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 우리는 그런 권력을 체감해 본 적이 없다. "품안의 자식"이란 말처럼, 당선되기 전의 후보자가 만만할 뿐 당선되고 난 다음 누가 그를 심부름꾼처럼 부릴 수 있는가. 권력을 잡으면 인식이 달라져 아래를 내려다보는 입장이 되기 일쑤다. 마치 버스 운전대를 잡으면 다른 차들을 내려다보는 쾌감을 즐기듯이 말이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욱일승천의 기세다.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점유하여 오랜만에 여대 국회를 구성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두 달 만에 백마를 타고 돌아왔다. 이들이 개구일성 외치는 것은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 셋째도 개혁"이다.

문제는 개혁 추구가 그 속성상 봉사하는 권력과 멀다는 점에 있다. 개혁주체와 개혁대상이 같을 수 없다면, 개혁은 칼자루를 휘두르는 것이지 남의 발을 씻어주는 것은 아니다. 틀린 것을 바로잡고 비효율을 효율적인 것으로 바꾸겠다는 것이 개혁의 명분 아닌가. 흔히 개혁은 병든 환자를 수술하는 의사에 비유되기도 한다. 환자의 복지를 위하여 수술한다고 하지만 환자가 병에 대하여 아는가? 치료와 처방에 대하여 아는가?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환자는 의사의 처분만 놓고 전전긍긍할 뿐이다.

과연 사회 경제 교육개혁에서도 이와 다른 논리가 통용될지 의문이다. 개혁에 몰두하는 권력은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나머지 개혁 비판자들을 기득권자로 몰아붙일 공산이 크다. 개혁을 한다고 하면서 시장의 '끼워팔기'처럼 복수심이 들어갈 수 있고 반대편을 무력화시키고 우군을 양산해 내려는 전략적 의도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겸허하게 비판을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아집과 편견을 절대화하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경제도, 교육도, 언론도 바뀌어야 한다"면서도 "제 논에 물대기식"으로 추진한다면 개혁은 권력이 행사되는 방식일 뿐 선진화를 위한 발돋움은 아니다.

개혁 자체가 국정 아젠다가 될 수는 없다. 개혁을 위한 개혁처럼 허망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개혁 추진보다는 개혁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 또 그 목적은 포퓰리즘적이 아니라 합리적인 절차를 통하여 수렴되어야 한다. 목적이 합리적으로 설정되지 않은 채 개혁부터 하겠다는 것은 목적지 없이 여행을 하겠다는 것과 같다. 물론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목적지도 없이 그저 끝없이 여행을 하려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여행 애호가이거나 방랑벽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목적도 뚜렷하지 않은데 개혁만 서두르는 개혁 애호가를 반길 만한 여유는 없다. 끊임없이 개혁만을 외치기보다 무엇을 위한 개혁인지,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 고민할 수 있는 지혜와 인내를 기대한다.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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