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청하고‥협의하고‥합의하고‥." 주한미군 1개 여단의 차출은 단 사흘 만에 결정됐다. 때문에 50년간 유지된 한미상호방위태세의 골간을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졸속담판으로 판가름 났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협의가 아니라 일방적 통보에 무너진 무기력외교라는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반기문 외교부장관은 외교채널을 통한 미국의 첫 요청이 14일 있었다고 18일 공식확인했다. 17일 아침에는 반 장관과 미 국가안보회의(NSC) 스티브 해들리 부보좌관,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의 전화통화로 차출은 확정됐다. 사흘만에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외교부 김숙 북미국장은 17일 하루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서로 상반된 내용의 발표를 해야했다. 아침 9시 브리핑에서는 "한미간 협의의 초기단계인 만큼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후 브리핑에선 "아침 9시30분 반 장관과 해들리 부보좌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차출계획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30분 만에 정부 입장이 바뀐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이번 조치는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은 오래 전에 끝났고 정부 내에서 주한미군 이동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탄핵정국 종식을 기다렸던 미국측의 기습적인 제안에 외교당국이 기선을 제압당했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또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용산기지 이전협정과의 연관성 등에 대한 검토를 소홀히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관계자는 "정부는 이번 차출조치가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전략에 따라 진행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미군 재배치 전략에 따라 움직이는 한미미래동맹정책구상 회의에서 이를 논의조차 하지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주한미군을 해외의 다른 분쟁지역에 투입하는 선례를 만든 것도 우려스런 결과라는 지적이다. 한 외교전문가는 "우리의 주권이 미치는 영토에 주둔하는 군대가 해외분쟁지로 파견될 경우 불필요하게 분쟁에 휘말릴 소지와 함께 우리 군대도 보조적 역할로 파병을 요청 받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사흘만에 '합의서에 도장을 찍는' 졸속담판으로 협상의 지렛대라는 외교적 실리를 상실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정부 주장대로의 협의라면 주한미군의 차출을 내주는 대신 한국군 추가파병 반대 카드를 반대급부로 내미는 협상을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정곤기자 kimj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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