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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손끝-한국의 장인들]<15> 가구 장인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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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손끝-한국의 장인들]<15> 가구 장인 김성수

입력
2004.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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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49)씨는 홍익대 회화과에서 그림을 전공했던 작가이다. 그러나 그가 만든 가구에는 '예술'의 티가 별로 없다. 실용만이 뚜렷하다. 그가 만든 서랍장은 무엇보다 서랍이 부드럽게 열리고 닫혀야 하고 식탁은 밥 떠먹고 국 떠먹는데 적절한 높이여야 한다. "가구라는 것은 예술이기 전에 사람들이 실제로 써야 하는 것이다. 그 자체가 아름다워야 하지만 주변과도 잘 어울려야 한다. 그래서 예술성이 강조된 가구보다는 편리하고 단아한 가구가 좋은 가구"라고 김씨는 말한다. 김씨는 1979년부터 현대가구를 만들어왔다. 그가 만드는 가구는 서랍장과 식탁 같은 것들이다. 모두 군더더기 장식이 없는 나무 가구이다. 천연페인트로 칠한 그의 가구들은 나뭇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린다는 점에서 어쩌면 전통가구의 특성을 계승한 듯도 하다. 그러나 굵직굵직한 판재나 대범한 크기 등은 현대식 생활에 필수적인 서양가구의 특징을 따르고 있다.

김씨가 처음 가구를 만들어본 것은 함양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미술반 학생이었던 그는 친구들과 쓸 서랍있는 낮은 탁자를 짰다. 미술반 학생들이 주로 하는 것은 그림이었지만 지방에 사는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톱과 망치로 뚝딱거리는 것 역시 그에게는 일상이었다. 특히 미술반 학생들은 캔버스나 액자, 화구상자도 직접 만들어 썼기에 나무를 소재로 만드는 것은 무엇에나 친숙했다.

대학에 가서도 뚝딱거리는 일은 계속됐다. "비싼 맥주라도 마시려면 여학생들 조각 작업을 도와주는 방법 밖에 없었다"는 김씨는 그 김에 화실 인테리어 같은 아르바이트에도 곧잘 나섰다고 한다. "지금은 돌이키기도 겸연쩍은" 청년기의 방황으로 대학에서 회화공부는 2년만에 작파했다. 군 복무를 마치고는 절에 갔다가 사생활이 복잡한 승려를 보고는 절에서 나오는 등 그의 20대 초반은 고뇌가 이끄는대로 진 길과 마른 길을 두서없이 밟고 있었다.

79년쯤에 대구에 정착했는데 그는 이때부터 가구 만드는 법을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함양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요. 그때도 미술반이어서 윗숲(함양 상림)에서 사생실기대회 연습을 했습니다. 신라말 최치원이 조성했다는 윗숲은 고목이 우거지고 개울이 흐르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맨날 보는 게 나무, 나무 뿌리라 그런지 나무가 좋더라구요."

그래서 그는 전통가구를 만드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스승인 김한중씨는 전통의 곡목(曲木)기법을 활용한 서양식 가구를 일제 때부터 만들어 왔노라고 했다. 스승으로부터 익힌 방법을 토대로 그는 현대식 가구를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82년에는 서울의 외곽지역이라 할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에 '가람디자인 김성수 공방'이라는 수제가구 공방을 차릴 정도가 됐다. 물론 이때도 저녁이면 그림을 그리고 낮에는 가구를 짜는 이중생활이었지만 그는 하고 싶은 그림과 가구를 맘껏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고 한다. "덕용 라면 많이 사놓으면 먹을 걱정은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 또는 "라면 시대"라고 이때를 표현하는 김씨는 "라면에 지치면 학교로 돌아가려고들 했지만 나는 가구가 좋아서 학교로 간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했다"고 한다. 덕소 시절 이듬해에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가람공방'을 낼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서울에서 그는 6개월만에 공방을 접어야 했다. "조각이 화려하거나 상감무늬가 요란한 장롱을 찾았지 내가 만드는 것처럼 딱딱 각이 진 서랍장이나 식탁을 찾는 사람은 드물었다"고 했다. 그는 장롱은 국적불명의 가구라 하여 아예 만들지도 않았다. 6개월동안 팔린 것은 서랍통 1개 뿐이었다.

좌절감에 그는 미국의 웨슬리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대학에서는 종교미술을 전공했지만 파슨스 디자인스쿨로 옮기면서 다시 가구를 부전공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에서는 가구에 대해서는 배운 것이 전혀 없다고 했다. 굳이 배웠다고 한다면 "정형을 따르되 자기 표현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 정도라고 했다. 거기에 덧붙여 "우리 것에 대한 연구를 더 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미국인 교수들이 '너희 나라의 특성을 살려보라'고 계속 주문했기 때문이었다.

92년에 귀국한 그는 다시 대구에 정착해서 김한중씨에게 배움을 더 청했다. 배우면서 만들기를 계속하면서 마침내 김성수류가 탄생했다.

우선 소재의 제한을 받지 않게 됐다. 그는 느티나무 먹감나무 참죽나무처럼 전통 장에 쓰이는 소재는 물론 참나무 벚나무 호두나무 같은 서양 가구의 소재를 두루 활용하는 데에서 나아가 색다른 소재의 활용에 나섰다. 아까시 나무와 사과나무 배나무 밤나무처럼 가구 소재로는 전혀 쓰지 않는 소재들을 적극 사용했다. 아까시 나무는 판재를 큼직하게 켜서 그 앞에 조명등을 달았는데 나무의 옹이와 결이 공작의 깃털 같은 무늬를 그려낸다. 물론 그가 쓴 소재는 국산은 아니고 동남아산이다. "우리나라 아까시 나무는 이런 거목이 없어서 써보지는 못했으나 국산도 이 정도 판재만 구할 수 있으면 아까시 나무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과나무는 대구의 과수원에서 나무를 갈아엎으면서 '맘대로 쓰라'고 해서 들고 온 것을 이리 저리 켜보았더니 "연한 분홍색이 나는 것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더라"고 했다. 그는 사과나무로 좌경을 만들었다. 그는 "나무의 특성을 잘 살려주면 모든 나무가 훌륭한 가구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두번째 특성은 한국인의 생활에 맞는 가구이다. 비록 식탁과 서랍장 같은 현대 가정생활이 필요로 하는 서양식 가구를 만들고는 있지만 그 형태는 한국 사람의 생활 양식에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식탁. 흔히 식탁의 표준 높이를 75센티 정도로 잡는데 그는 70센티 정도로 식탁을 제작한다. "서양의 식생활은 납작한 접시에서 나이프와 포크를 옆으로 움직여 평면 운동이 주로 일어나지만 우리나라의 식생활은 식탁 위에 움푹한 밥그릇 국그릇을 놓고 수직으로 떠먹는 운동이 주로 일어나기에 같은 입식생활을 해도 식탁이 더 낮아야 상 쓰임새가 편리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편리한 가구를 지향한다. 그는 "쓰이지 않는 가구를 만드는 것은 낭비이며 불필요한 장식은 죄악"이라고까지 말한다. 장식적 요소를 배제하고 기능성을 극대화한 가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그는 가장 중시한다. 가령 잘 만든 서랍장에 대한 그의 기준은 간결하다. '어느 위치에서 서랍을 움직여도 잘 빠지고 들어가느냐'이다. 습하면 물기를 머금고 건조하면 물기를 내놓는 나무의 속성상 어느 정도 크기가 줄고 늘고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잘려진 공간 안에 딱 맞게 끼여 들어가야 하는 서랍은 장인이 나무가 늘고 줄 때의 차이를 미리 감안해서 제작하지 않으면 잘 빠지지 않는 애물이 되어 버린다. 그만큼 기본이 된 가구를 그는 좋은 가구라고 생각하고 있다.

국내에는 전통가구 분야는 장인들이 만드는 것을 구할 수 있으나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현대식 가구는 장인의 작품을 찾기 힘들다. 대신 공장제 가구가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높아지는 소비자의 욕구를 맞춰주지 못하다보니 외국산 가구의 시장 점유율이 점차로 높아지고 있다. 국내서 작가들이 만드는 창작 가구는 실용성 보다는 예술성을 강조하다보니 일상 생활에서 편리하게 쓸 수 있는 맞춤가구는 갈수록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이 때문에 김씨는 "일상가구들을 제대로 만들어낼 장인들이 많이 생겨주어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 가구학교

김성수씨는 99년에 대구에 '가람가구학교'를 만들었다. 당시 실직자들을 위한 취업훈련을 겸해서 탄생한 가람가구학교는 1년 과정으로 매년 7∼8명 내외의 학생을 받고 있다. 2003년부터는 서울로 옮겨와 강남구 도곡동에서 가르치고 있다.

학교에서도 현대 가구를 가르치는 과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제작보다는 디자인을 주로 가르친다. 4년제 대학 가운데는 홍익대가 95년 목공예과를 목조형가구학과로 바꾸어서 가구 제작과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전문대인 서일대(서울 중랑구)가 90년 생활가구디자인과를 국내 최초로 만든 데 이어 경민대(경기 의정부시)가 99년 가구실내디자인과를 만들었다.

국민대는 2001년부터 일반인들이 가구제작방법을 배울 수 있는 개방과정으로 목조건축디자인센터 가구디자인스튜디오를 만들어 1년 과정의 수강생을 매년 모집한다. 이 스튜디오 디렉터 역시 김성수씨로 매년 10명 정도를 모집한다. 가람가구학교와 국민대 목조센터가 만든 산학협동센터가 대구 청주 포항에서 맞춤가구를 제작하고 가구제작법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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