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서태평양의 섬나라 팔라우(Palau)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서태평양의 섬나라 팔라우(Palau)

입력
2004.05.19 00:00
0 0

서태평양의 섬나라 팔라우(Palau). 아주 생소한 곳은 아니다. 태평양전쟁 당시 격전지였고 그래서 한국인 징용자들이 많이 끌려갔다. 1990년대 초 태평양 격전지를 따라 징용자 위령탑이 차례로 세워지면서 다시 우리의 기억 속에 들어왔고 최근 탤런트 이승연의 누드촬영지로 크게 알려졌다.'지상의 마지막 천국', '신이 숨겨놓은 곳'…. 아름다운 여행지를 표현하는 수많은 헌사가 있지만 팔라우에 대한 찬사는 '물빛에 취해 물속에 빠진 천국'이다. 팔라우는 해변에 누워 일광욕과 독서를 즐기며 쉬는 나른한 휴양지가 아니다.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레포츠를 즐겨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다름 아닌 물 속 여행이다. 수정처럼 맑은 팔라우의 바닷속에는 정말 천국이 빠져 있다.

● 송이버섯이 둥둥 떠있는 듯한 록 아일랜즈

호텔 앞 해변의 선착장에서 배를 탄다. 행선지는 록 아일랜즈(Rock Islands). '팔라우의 보석'으로 불리는 곳이다. 수도인 코롤(Koror)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200여 개의 섬이 파란 산호 바다 위에 떠있다. 그런데 배의 겉모습은 일단 실망이다. 약 20명이 탈 수 있는 작은 모터 보트이다. 비와 햇빛을 막는 지붕이 엉성하게 덮여 있고 좌석도 지하철처럼 갑판 양쪽에 길게 붙어 있다.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우리나라 유원지에서도 고물 취급을 받을 정도이다. 그런데 선착장을 떠나자 인식이 달라진다. 배에는 200마력짜리 일제 모터 2개가 달려있어 물 위를 달린다는 표현도 부족하다. 물 위를 날아간다. 코롤과 록 아일랜즈 지역은 파도가 없다. 대양의 파도를 막는 산호벽인 보초(堡礁·barrier reef) 안의 지역이다. 호수처럼 잔잔하다. 배는 파란 잉크빛 호수를 하얗게 가르며 날아간다.

록 아일랜즈가 눈에 들어온다. 낯이 익은 풍광이다. 항공사 CF로 널리 알려진 베트남 하롱베이와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섬마다 짙은 수림이 우거져 있고 물빛이 맑다는 것이다. 섬은 단단한 석회암(limestone)으로 이루어져 있다. 밀물과 썰물이 왕래하면서 석회섬의 아랫부분을 파먹었다. 잘 생긴 송이버섯이 물 위에 떠 있는 모습이다.

버섯 사이로 곡예를 하듯 날던 배가 한 섬에 도착한다. 사면이 절벽인 다른 섬과 달리 작은 산호사 해변이 있는 곳이다. 점심과 함께 물 속에서의 공포를 없애는 스노클링 강습이 이루어진다. 점심 메뉴는 간단한 바비큐. 한국인 여행객에게는 밥과 김치가 들어있는 도시락에 돼지 목살, 닭다리, 소시지 바비큐가 곁들여진다. 열대의 야자수 그늘에서 맛보는 밥과 김치. 기분이 묘하다.

어른 허리 정도의 수심에서 스노클링 강습을 받는다. 가이드의 지도에 따라 물안경을 끼고 바닷속을 들여다 본다. 맑은 바닷물과 꼼틀거리는 오색 열대어의 모습에 물에 대한 두려움은 금새 사라진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 둥둥 떠서 얼굴을 들 줄 모른다.

● 열대어의 군무… 왕조개… 옛 일본군함 "눈맛"

배와 용기를 채운 후에는 이동이다. 이른바 '스노클링포인트'로 간다. 도착한 포인트에는 다른 배들도 여럿 있다. 수심은 사람 키보다 깊다. 그렇지만 누구나 두려워하지 않고 물로 뛰어든다. 셀 수 없이 많은 열대어의 군무가 눈 앞에 펼쳐진다. 점심 때 먹었던 닭다리의 뼈가 유용하다. 물 속에 넣으면 바닥에 가라앉지 않는다. 수 많은 물고기들이 붙잡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물안경 앞에 먹이를 붙이면 물고기의 눈빛까지 확인할 수 있다.

록 아일랜즈에는 열대어를 구경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주제의 스노클링 포인트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그레이트 클램(Great Clam)으로 불리는 왕조개와 태평양 전쟁 당시 침몰한 일본 군함이다. 그레이트 클램은 말 그대로 거대한 조개이다. 큰 것은 폭이 1m가 넘는다. 수심 약 2m 지점에 모여 산다. 주둥이를 위로 향하고 산호 모래에 묻힌 채 이동하지 않지만 주둥이만 닫으면 해칠 천적이 없다. 수면에 떠서 물 속을 보면 조개가 보인다. 자맥질을 해 내려가서 손을 대면 거대한 주둥이를 천천히 닿는다. 식용으로도 쓰이지만 관광객은 채취할 수 없다. 한 마리로 20여명이 포식한다고 한다.

일본 군함은 섬 사이로 미로처럼 연결된 바다에 빠져 있다. 길이 약 50m로 제법 크다. 이 배가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 올 수 있었을까. 당시 쫓고 쫓겼던 격전을 떠올리게 된다. 파란 물 속에 검게 드리워진 군함의 동체가 마치 유령의 집 같다. 물안경을 쓰고 물 속에 들어가면 더욱 그렇다. 평화로운 바다에서 느끼는 화약냄새. 물에 대한 공포가 아닌 전쟁에 대한 두려움으로 소름이 돋는다.

● 고운 산호가루를 온 몸에 바른후 다시 풍덩

두 가지의 록 아일랜즈 하이라이트가 기다린다. 해파리(Jellyfish) 호수와 산호머드팩이다. 해파리 호수는 엘 마르크라고 불리는 록 아일랜즈의 한 섬 안에 있다. 수수께끼 같은 호수이다. 섬 안의 움푹 패인 곳에 바닷물이 들어왔다가 고립돼 호수를 이뤘다. 이 호수의 주인은 해파리이다. 수천만 마리의 해파리가 떼지어 산다. 해파리는 천적을 만나면 촉수로 쏘는데 이 호수의 해파리는 그 기능을 잃어버렸다. 수만 년 고립되어 살면서 천적의 위험이 없자 퇴화한 것으로 짐작된다. 덕분에 물 속에서 이루어지는 해파리의 군무를 스노클링으로 직접 볼 수 있다. 해파리의 색깔은 맑은 주황색. 솥뚜껑만한 큰 것은 너울∼너울 움직이고 손톱만한 아기 해파리는 팔랑팔랑 운동을 한다. 물안경 바로 앞에서 펼쳐지는 주황빛 세상. 신비롭다.

섬이 촘촘하게 붙어 조류의 운동이 거의 없는 물길이 있다. 팔라우에서는 '밀키웨이(Milky Way)'라고 부른다. 물 흐름이 없어 고운 산호가루가 침전되어 있다. 밀가루보다 곱다. 원주민 안내인이 물 속에 들어가 산호가루를 배 위로 떠 온다. 이 가루를 온 몸에 바른다. 햇볕에서 2∼3분이면 단단하게 마른다. 마르면서 피부의 노폐물을 빨아들인다. 그리고 물 속으로 풍덩, 수영을 즐기면서 팩을 씻어낸다. 팩의 원료를 있던 자리에 다시 돌려 놓는 셈이다. 봉이 김선달이 울고 갈 장사다.

/팔라우= 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수도 코롤

국립박물관이 첫 순위이다. 국립이지만 워낙 작은 나라여서 박물관도 작다. 2층 건물로 팔라우의 조개화폐, 구슬, 그림문자 등을 관람할 수 있다. 박물관 바깥에 팔라우의 전통 가옥이 있다. 짚을 이어 만든 뾰쪽한 지붕의 이 가옥은 족장들의 공공회의 장소로 사용됐던 바이(bai)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거의 모든 전통가옥이 타버렸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자체 문자가 없었던 팔라우인은 집의 벽에 그림을 그려 역사를 남겼다. 바이 옆으로 인본군의 기관총, 비행기 프로펠러 등 전쟁의 잔해가 전시되어 있다.

또 다른 박물관으로 에피손 박물관이 있다. 에피손 전(前) 대통령이 지은 사설박물관으로 오히려 국립박물관보다 볼 것이 많다. 특히 2층 토산품점은 팔라우에서 가장 다양한 상품을 취급한다.

팔라우의 바닷속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은 지난 해 문을 연 팔라우 아쿠아리움이다. 바닷물을 마시며 사는 독특한 나무인 망글로브 코너를 중심으로 산호초 주변의 자연과 생명체를 설명한다. 산호와 산호초의 생성, 얕은 바다 물고기와 깊은 바다 생물 등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수족관이 모두 노천으로 되어 있어 자연광을 받은 열대어의 아름다운 빛깔이 그대로 비친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돌고래 연구센터인 돌핀 퍼시픽도 볼거리. 2001년 문을 연 센터에는 현재 11마리의 돌고래가 있다. 비영리시설인 이 곳에서는 돌고래들과 함께 수영 또는 스노클링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다이빙을 통해 돌고래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반인에게 자유롭게 개방되는 대통령 집무실도 코롤의 명물. 거창한 궁(宮)이 아니라 허름한 콘크리트 건물이다. 우리나라 면사무소 규모의 대통령 집무실 입구에는 경비를 맡는 초병조차 없다. 대통령 집무실(Office of President)이라는 간판을 보고서야 실감을 할 수 있다.

작은 나라의 소박한 대통령 집무실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것은 큰 영광이다. 관광객들은 너도나도 집무실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 팔라우 가려면

팔라우는 북위 7도30분에 위치한 섬나라이다. 화산 폭발로 인한 340여 개의 섬이 있으며 9개 섬에만 주민이 산다. 인구는 2만명 내외로 종교는 가톨릭 40%, 개신교 40%, 전래신앙 20% 이다. 모두 16개의 주(州)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작은 주는 주민이 23명에 불과하다.

기구한 근·현대사를 갖고 있다. 1783년 영국 안텔로프호가 이 지역에서 좌초돼 배를 수리하면서 서양 문명과 접촉을 시작했다. 1885년부터 1899년까지 스페인, 1914년까지 독일,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이후 유엔의 태평양 신탁통치령으로 미국이 통치했다.

1994년 팔라우 공화국으로 독립, 현재 토미 레민게사우 5대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 미국은 신탁통치를 접었지만 군사적인 요충지여서 경제지원 형태로 끈을 유지하고 있다. 다양한 나라의 식민지배를 받아 음식이나 생활습관 등의 문화가 골고루 섞여 있다.

미국의 경제지원과 관광업, 코코넛 재배에 힘입어 1인당 국민소득이 8,000달러가 넘는다. 영어와 팔라우어를 사용하고 문자는 영어 알파벳을 쓴다. 문맹률은 8%에 불과하다. 열대해양성 기후로 기온이 연간 섭씨 26∼30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과의 시차는 없다. 사용하는 화폐는 미국 달러화이며 전기는 110볼트와 220볼트를 겸용한다.

과거 팔라우는 한국에서 먼 곳이었다. 직항 노선이 없어 유럽, 대만, 일본인들이 주로 찾았다. 9일부터 6월말까지 아시아나항공 전세기가 주 2회(목, 일요일 오후 9시 출발) 왕복운항하면서 한국 관광객에게도 얼굴을 보이게 됐다.

비행시간은 4시간40분 정도. 한국인 교민은 80여명에 불과하지만 4개의 한국식당이 있고 한국인이 경영하는 대형 마트(한파마트)가 있어 한국인이 여행하기에 불편하지 않다. 하나투어리스트(www.hanatourist.co.kr·1577-1212)에서 전문적으로 팔라우 여행 상품을 취급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