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예? 광주 분들이 모두 내 가족 아니겠습니꺼."해마다 5월18일이면 '광주 영령'들과의 만남을 위해 부산에서 광주까지 동서를 가로질러 국립 5·18묘지 참배길에 오른 '부산 아지매' 황명자(62)씨가 올해 24주기에도 어김없이 묘역을 찾았다. 17일 오후 광주에 도착해 묘지마다 국화꽃을 놓고 추모제를 올렸던 황씨는 이날 기념식에서 정수만 5·18유족회장 등 유족들과 함께 유족석을 지켜 눈길을 끌었다. 광주 5월 단체와 유족들도 부산 토박이나 다름 없는 그를 유족으로 인정한 셈이다.
황씨가 5·18 묘지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88년 5월. 당시 부산에서 의상실을 운영하던 중 손님들로부터 "부산 사람이 광주에 차를 몰고 주유소에 가면 기름도 안 넣어준다", "경상도 사람들 전라도가면 몸 조심해야 한다"는 등 귀를 의심케 할 말들을 전해 들으면서부터였다.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설마 그럴까' 반신반의하던 그는 진실확인을 위해 5·18 유족인 것처럼 하얀 소복을 입고 부산에서 택시를 대절해 광주까지 단숨에 달려 갔다. 그는 "당시에 소문이 워낙 흉흉해 광주에 가면서도 사실 겁이 많이 났었다"며 "그러나 광주에 도착해 시민들을 만나본 결과 헛소문임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부산에 돌아와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데 힘썼고, 이 때문에 자신은 물론 가족과 친지들이 정보기관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등 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5·18 알리기'는 멈추지 않았다. 매년 1월1일과 5월18일 두 차례 5·18묘역을 찾았고, 그가 활동하는 부산 로터리클럽 회원들과 5·18유족회 간 상호방문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의 남다른 광주 사랑은 1994년 '영·호남 사랑과 우정의 기념비'를 5·18 구 묘역 입구에 세우는 것으로 결실을 맺기도 했다.
"매년 5·18때마다 동서화합을 입이 닳도록 외쳐대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라는 황씨는 "그렇지만 이 소원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고 이를 위해 내년에도 5·18묘지를 찾을 것"이라며 부산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