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8월12일 해질 무렵 일본 니가타(新潟)현 사도(佐渡)섬에서 오봉(선조에 제사를 올리는 음력 7월15일 대보름 명절) 제수용품을 사러 나간 소가(曾我) 미요시(당시 46세), 소가 히토미(당시 19세·간호사 실습생) 모녀가 실종됐다.2002년 9월17일 평양,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와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측은 '일본인 피랍자 5명 생존, 8명 사망, 2명 입국미확인'이란 내용이 담긴 자료를 넘겨주었다.
소가 히토미(현재 45세)는 '민혜경'이란 이름의 중년 여성으로 평양에 살고 있었다. 주한 미군 월북자 출신의 남편 찰스 로버트 젠킨스(Charles Robert Jenkins·64)와의 사이에 평양외국어대학에 다니는 미화(美花·20), 블린다(18) 두 딸까지 두었다.
북한측 자료는 "특수기관 공작원이 신분위장 또는 어학교육 목적으로 일본인 청부업자에게 의뢰해 넘겨받아 데려왔다. 공작원이 청부업자로부터 넘겨받은 것은 소가 히토미 한 사람뿐이라서 소가 미요시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1980년 8월8일 소가 히토미와 결혼한 젠킨스는 1965년 1월5일 판문점 부근의 주한미군 제1기병사단 8연대 1대대 C중대에서 중사 계급의 분대장으로 근무하다가 월북했다. 미군도 자체 조사에서 젠킨스가 베트남 전선으로의 전속을 피하기 위해 탈영한 것으로 결론지었고 그 뒤 북한 영화 '이름없는 영웅들'에 미국 스파이로 출연한 것도 확인됐다.
2002년 10월15일 소가 히토미는 다른 피랍 생존자인 치무라 야스시(地村保志·48)·후키에(富貴惠·48) 부부, 하스이케 가오루(蓮池薰·46)·유키코(祐木子·48) 부부와 함께 24년만에 일본에 돌아왔다. 젠킨스와 두 딸, 치무라 부부의 2남1녀, 하스이케 부부의 1남1녀는 북한에 남겨졌고 일본에 돌아온 5명은 가족 8명을 일본에 데려오는 염원으로 지냈다.
고이즈미 총리의 22일 재방북으로 가족 귀국 길이 열렸지만 소가 히토미는 불안하다. 젠킨스는 일본에 오면 미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기소될 가능성이 남아있다. 남편이 과연 일본행을 택할지, 만약 젠킨스가 북한에 남을 경우 두 딸은 또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17일 고이즈미 총리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회담 등을 통해 젠킨스의 사면을 요청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 정부는 이라크 포로수용소 고문 사건으로 군의 규율을 강조하는 시기라서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한다.
어머니의 행방에 대한 진상규명도 요구하고 싶지만 우선 남편과 두 딸이 올 때까지는 참아야 한다. "모든 게 걱정스럽지만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말만 하고 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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