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탄핵 소동이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탄핵에 대한 심판은 이미 촛불시위와 총선에 의해 내려진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당연한 것이고, 이번 탄핵 사태를 통해 배워야 하는 핵심적인 문제는 대의민주주의의 근본적인 한계이다.우리 정치제도는 국민을 주권을 가진 주인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직접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그 주권을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에게 사실상 위임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탄핵은 국회의원들이 이처럼 위임된 권한을 가지고 헌법이 부여한 탄핵권을 합법적으로 행사한 것으로 형식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번 탄핵처럼 의원들의 행동이 주권을 위임한 국민들의 의사와 전혀 다른 경우이다. 이 경우 시위를 하거나 다음 선거 때 이들을 낙선시키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점 때문에 프랑스 철학자 루소는 현대 민주주의를 선거 때만 국민이 주인이 되고 선거만 끝나면 노예로 되돌아가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도 민주노동당이 주장해 온 국민소환제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같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행정부, 즉 대통령, 도지사 등에게도 해당된다는 점이다. 즉 우리가 대통령으로 뽑았다고 해서 그에게 모든 권한과 주권을 위임한 것은 아닌데도 대통령은 그처럼 행동하고 국민은 견제할 장치가 별로 없다. 따라서 미국은 많은 주에서 주 행정부 수장인 주지사에 대해 주민소환제를 시행하고 있고, 최근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소환되어 임기 중에 파면됐다.
이와 관련해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이라크 파병이다. 여러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첫 파병 당시부터 국민 절대다수는 파병에 반대했다. 최근 여론조사도 60% 정도가 추가 파병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과 국회는 파병을 강행했고, 추가 파병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탄핵과 마찬가지로 대의민주주의의 맹점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가 16대 국회의원을 뽑을 때 이들에게 노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까지 위임한 것이 아니듯이 노 대통령과 16대 의원, 그리고 17대 의원을 뽑았을 때 국민의 의사에 반하여 이라크에 파병을 하라고 위임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정치라는 것이 모든 것을 국민에게 물어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것은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라크 파병은 일상적 사안이 아니라 국민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는 외교, 국방의 중대사이다. 이 점에서 시사적인 것이 바로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헌법재판소는 국민투표를 통해 재신임을 묻겠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헌법은 국민투표를 국가 안위에 관한 군사, 외교 등의 중요 정책에 한정하고 있다며 그런 사안이 아닌 재신임을 국민투표로 묻겠다는 것은 헌법을 정략적으로 이용한 위헌적 발언이라고 판결했다.
그렇다. 헌재의 결정처럼 노 대통령 재신임이 아니라 국가 안위에 대한 군사, 외교적 중요 정책인 이라크 파병이야말로 국민투표 사안이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이미 도덕적으로 파탄이 난 이라크전 추가 파병을 스스로 철회하거나, 최소한 국민의 뜻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루소의 표현처럼 선거가 끝났다고 국민을 다시 노예로 돌려보내서는 안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국민들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그리고 국회의원들에게 표를 던졌을 때 국민의 뜻에 반해서 이라크에 파병하는 것까지 위임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이 탄핵이 가져다 준 진짜 교훈이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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