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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老鋪]<34> 전주 삼백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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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老鋪]<34> 전주 삼백집

입력
2004.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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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에 콩나물국이 올라올 때면 어머니 생각이 더욱 절절해집니다." 어느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다. 그는 유달리 콩나물국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더욱 진하게 맛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술에 대해 눈을 뜰 나이가 되면서 과음한 다음 날 아침 어머니가 맑은 장국으로 끓여낸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듬뿍 쳐 땀을 흘리며 먹던 추억을 웬만한 남정네들은 간직하고 있을 것 같다. 온 몸을 적시는 땀이 체내의 술기운을 싹 씻어가는 동안 어느덧 정신까지 쇄락해지지 않았던가. 어머니의 콩나물국을 그리워하는 남정네들이 예외 없이 내뱉는 후렴귀가 있다. "그런데 아내가 끓여준 콩나물국에선 왜 어머니의 맛이 나지 않을까…." 부인이 들으면 무척 억울하고 속상해 할 푸념이다. 어느 음식치고 어머니의 정성이 빠지겠냐 만은 콩나물국이 비교적 손쉽게 마련할 수 있는 음식이기에 식탁에 자주 등장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콩나물국에 밥을 만 콩나물국밥을 별미로 가꿔온 전주의 '삼백집'은 어머니의 정성을 담아 손님상에 내놓는다고 자부한다. 그런 긍지는 이 집을 창업한 고 이봉순할머니의 방침이기도 했다. "손님을 자식과 손주처럼 대했던 이봉순할머니의 정성과 맛을 그대로 살려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삼백집의 안주인 김분임(金粉任·58)씨는 변함없이 찾아주는 손님의 모습에서 그런 믿음을 확인한다고 말한다.

삼백집은 이봉순할머니가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에 지금 자리(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1가 454-1)에서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어느새 반세기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할머니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숯불에 콩나물국밥을 끓여 300그릇을 팔고 나면 문을 닫았다. 그래서 어느 시인이 '삼백집'의 상호를 지어주었단다. 모주 또한 그 시인이 '어머니의 술'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콩나물국밥은 이렇게 삼백집에서 태어났다.

초창기부터 이 집의 콩나물국밥은 맛이 담백하고 시원하다고 술꾼 사이에 소문이 자자했다. 술로 시달린 속을 달래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해장국이 됐다. 이제 콩나물국밥은 더 이상 술꾼만의 음식이 아니다. 한끼 식사로 훌륭한 음식의 자리에 올랐고 비빔밥 한정식과 더불어 전주를 대표하는 향토음식으로 자리잡았다.

10여년 전 세상을 떠난 창업자는 '욕쟁이할머니'로 널리 사랑을 받았다. 그 애칭은 곧 할머니의 정성과 마음을 말해주고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옜다 많이 처 묵어라" 하며 뚝배기 가득 밥을 말아 내놓았다. 그 말은 욕이 아니라 자애로운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할머니의 입에서 욕이 안 나오는 날은 오히려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누가 보면 영락없이 박대통령인 줄 알겠다. 계란이나 하나 더 먹어라." 박정희 대통령이 생전에 남몰래 이 집을 찾았을 때 할머니는 미처 대통령인줄 모르고 그렇게 친근감을 표시했다는 일화는 전설이 됐다. 삼백집의 주인은 여러 번 바뀌었다. 현재는 김분임씨가 남편 조정래(趙正來·59)씨와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 부부가 이봉순할머니의 피붙이는 아니다.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닿아 삼백집을 인수할 수 있었다.

맛이 태어나는 주방은 김씨의 언니(김옥림·66)가 책임지고 있다. 언니는 친정어머니처럼 타고난 손 맛을 지니고 있다고 김씨는 들려준다. 밥은 김제평야의 찰진 쌀로 지어 대소쿠리에 담아놓는다. 주문을 받으면 뚝배기에 밥을 퍼 담은 뒤 콩나물육수와 쇠뼈 삶은 국물을 붓고 콩나물 깨소금 새우젓과 '맛내기 김치'를 넣고 푹 끓인다. 맛내기 김치는 매년 김장철에 담가 2년 정도 소나무 숲에 땅을 파고 묻어 숙성시킨다. 김 오징어젓갈 장조림 깍두기 등이 찬으로 올라오는데 국밥과 썩 잘 어울린다. 여기에 모주 한 잔을 곁들이면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다. 모주는 막걸리에 찹쌀가루 계피 흑설탕 생강 감초를 넣고 5시간 이상 끓인다. 이 집만의 또 다른 특미다. 콩나물국밥(4,000원) 모주(1,500원) 외에 선지국밥(4,000원)과 돌솥밥(6,000원)이 있다.

조씨 부부가 삼백집을 인수한 때는 83년. 봉급쟁이 생활을 하던 조씨도 단골이었다. 어느날 조씨는 당시 주인으로부터 "적당한 사람이 나타나면 가게를 팔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조씨가 "나를 주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그렇게 해서 삼백집의 새 주인이 됐다. 김씨는 "살림만 하다 사회생활을 하니 모든 일이 무척 즐거웠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손님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주고 받으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커지게 되더군요." 원불교신자인 김씨는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손님들이 맛있게 들고 가기를 기원한다. 매년 어버이날 일정한 시간에는 효도잔치를 벌인다. 모든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휴일에는 보통 1,000명 이상의 손님이 찾는다. 어찌 보면 하찮게 보이는 콩나물국밥이지만 "정말 맛있게 먹고 갑니다" 고 인사하는 손님들 때문에 김씨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24시간 문을 여는 삼백집은 쉬는 날이 없다. 설날과 추석에도 오전에만 문을 닫는다.

"손님들의 사랑이 없었다면 삼백집은 이처럼 오랫동안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날이 갈수록 우리의 소유만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향토의 자랑거리로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정성과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되겠지요." 김분임씨의 다짐이 아니더라도 삼백집은 이미 그런 위치를 향해 가고 있다.

이기창 편집위원 lkc@hk.co.kr

도움말 김용범(소설가)

■콩나물 삶을 때 식용유 한방울 씹히는 맛 더해

삼백집의 콩나물국밥은 육수가 맛을 좌우한다. 육수는 다시마 멸치 명태 무 양파 등속을 넣고 센 불에 끓여 낸다. 그런 다음 육수를 내려서 따로 챙겨 놓는다. 콩나물을 삶는 데도 세심한 정성이 필요하다. 뜨거운 물에 식용유 한 방울을 떨어뜨린 뒤 콩나물을 넣는다. 삶는 시간은 4, 5분 정도 걸리며 그래야 콩나물이 물러지지 않고 사각사각 씹히는 맛이 더해진다.

전주지방의 콩나물은 예전부터 유명한데 삼백집은 완주군 구이면 백여리 계곡에서 옹기시루에 콩나물을 기른다. 이렇게 키운 콩나물은 다른 것 보다 신선도가 뛰어나고 맛도 고소하다. 옹기시루 한 개에서 보통 50인 정도의 콩나물이 나온다. 콩나물 재배는 물도 좋아야 한다. 삼백집은 지하 150m 암반에서 끌어 올린 청정한 물을 사용한다. 재배기간은 여름에는 4일, 겨울에는 7, 8일 걸린다. 콩나물은 잔뿌리가 없고 다 자라기 직전에 길이 5∼6cm크기의 것을 재료로 쓴다. 이 정도 크기의 콩나물이 맛이나 영양면에서 가장 좋다.

콩나물국 조리법은 문헌상 1910년대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콩나물은 각종 요리에 감초 역할을 할 만큼 그 용도가 다양하다. 콩나물국밥은 물론이고 전주와 진주의 비빔밥, 마산의 미더덕찜과 아구찜 등에 콩나물은 빠져서는 안될 재료다. 콩나물은 우리 식탁에 일상적으로 올라오는 반찬이자 향토의 별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영양학적으로도 콩나물에는 콩으로 있을 때 없던 비타민 C가 생성돼 비타민의 주요한 공급원이 된다. 우리가 콩나물을 언제부터 먹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고려 고종 때 '향악구급방(鄕藥救急方)'에 대두황(大豆黃)으로 처음 등장하며 조선시대 문헌에는 두아채(豆芽菜)라는 이름으로 조리법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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