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서점들이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도서 덤핑 경쟁을 벌이면서 출판 유통시장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정가의 최고 50%에 이르는 할인으로 소비자들에게는 '제값 주고 사면 바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온라인 서점에 밀려난 오프라인 서점은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덤핑 판매 대열에 끼지 못하는 영세출판사나 기존 온라인 서점들도 도산 위기에 몰리고 있다. 눈앞의 이익만을 노리는 대형 출판사, 도서정가제의 허점을 악용하는 온라인 서점들이 '죽음의 게임'을 벌이고 있는 출판시장의 실태와 문제점을 점검한다.
오프라인 잡아먹는 온라인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무료배송제도 이후 온라인 도서시장의 출혈 경쟁은 끝이 없다. 5월 초부터 인터넷 종합 쇼핑몰 인터파크(www.interpark.com)와 온라인 서점 '예스 24'(www.yes24.com) 등이 주요 출판사의 책을 최고 50%까지 할인해서 팔고 있고, 앞으로도 수시로 이런 행사를 벌일 예정이다. 이 행사 후 인터파크의 경우 매출액이 50%나 증가, 5월 한 달만 100억원이 훨씬 넘을 것으로 보인다. 전년 대비 4배 가까이 뛴 수치이다. '예스24'도 이를 통해 현재 20% 이상의 매출 신장을 거두었다.
반면 오프라인 서점들의 모임인 한국서점조합연합회는 5월 매출이 30∼40%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이창연 회장은 "최근 서울에서만 40여 곳의 서점이 문을 닫았다"면서 "마치 폭탄을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형출판사의 책값 책정 의혹
이러한 사태에 대해 출판계는 일부 대형출판사와 인터넷서점의 시장독식 욕구를 첫번째 이유로 꼽고 있다. 인터넷 서점은 일반 대중이 선호하는 안전한 책들을 고르다 보니 유명 대형 출판사를 선택하고, 출판사들은 그 동안 이미 팔 만큼 판 책들을 덤핑함으로써 매출을 올린다는 것이다.
더구나 일부 출판사들은 처음부터 할인을 염두에 두고 가격을 높여 거품을 씌우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예전에 비해 제작비의 30% 이상을 더 붙여 책값을 정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할인 경쟁이 치열했던 2002, 2003년 책값 상승폭은 이전 7년 동안의 전체 상승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도서정가제의 허점도 이유로 지적된다. 현행법은 마일리지 한도를 제한하는 시행령이나 세칙이 없는 상황에서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또 10% 이상 할인이 불가능한 발행 1년 이내 신간을 구간과 묶어서 대폭 할인해주는 등 온갖 편법이 난무하고 있지만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전망과 대책
1차적으로 가장 피해가 큰 오프라인 서점계는 도서정가제 법률안 개정을 추진하는 등 자구책에 부심하고 있다. 이창연 회장은 "현재 도서정가제는 도서할인제"라며 "온라인에서도 정가제를 지킬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불완전한 도서정가제 실시에 따른 피해가 큰 만큼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낼 예정"이라며 "협회 소속 전국 서점들이 책값을 50% 할인해서 팔고, 출판사에 대금 결재를 보류하는 극단적 조치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할인이 없는 완전 도서정가제를 거론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공급자인 대형 출판사들의 태도 개선이 우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책값을 제대로 매기고 합리적인 유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관광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도서정가제는 큰 틀에서 문제가 없다"면서 "도서가격 책정 과정에 대한 검토와 함께 오프라인 서점들도 정부의 보호만 기다릴 게 아니라 전문서점 특화, 네트워크화, 온라인과의 연계 등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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