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가 마치 물귀신에 발목이 잡힌 것처럼 끝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잇단 지수 급락세 속에 간신히 지난주 거래를 마친 증시는 이번 주 첫 거래일인 17일에 또다시 악몽 같은 '블랙먼데이'를 연출했다.장세 폭락의 뚜렷한 재료가 부각된 것도 아니었다. 또 외국인을 비롯한 투자주체들이 대규모로 주식을 내다 판 상황도 아니었다.
다만 싼값에라도 주식을 사려는 사람이 없는, 매수세의 소멸이 폭락세를 야기했다. '건드리면 터지는' 지뢰밭 같은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대만 증시가 폭락의 뇌관
이날 증시 폭락의 뇌관은 대만 증시였다. 국내 증시는 장 초반 만해도, 미미하나마 강보합세를 나타내며 반등의 힘을 추스리는 듯 했다. 그러나 천수이볜 총통과 중국 간의 긴장 고조, 정보기술(IT) 주도 기업의 재고 급등 등의 소식으로 대만 증시가 5%대의 폭락세를 보이자, 한국과 일본 증시 역시 3∼5%대 폭락의 태풍권으로 빨려 들어갔다.
미국 조기 금리인상 가능성, 중국 금리인상, 고유가 장기화 우려 등 지속되고 있는 세계 증시의 3대 악재는 수면 아래 잠복하고 있다가, 대만 정정불안과 같은 개별 악재가 부각되면 곧바로 새로운 악재와 엉겨붙으면서 증시를 한 입에 집어삼키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이날 20일로 예정된 집권 2기 정부 출범에 앞서 대만 총통의 독립 성향을 비난하고 "독립 절차를 억압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인텔과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등 미국 반도체 업체의 재고가 3년래 최고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소식으로 반도체 경기정점에 대한 우려가 증폭된 것도 한국 대만의 IT업종 폭락을 부추겼다.
증시 전문가들은 "약세장에서는 악재만 눈에 띄고, 악재가 아닌 것도 악재처럼 보인다"며 "탄핵 기각 결정 이후 노무현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 강화 움직임 및 청와대 조직개편 등도 국내 증시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매수세 소멸이 부른 파국
하지만 최근의 지수 급락은 무엇보다 극심한 '매수세 소멸'에 따른 현상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지적이다. LG투자증권 황창중 투자전략팀장은 "매도 호가와 매수 호가간의 갭이 커지면서, 거래 없이 주가가 미끄러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매수세가 있다면 거래량이나 거래대금이 크게 늘어나야 할 지수대인데도 시장은 무서우리만치 조용하다"며 탄식했다.
대우증권 홍성국 투자분석부장은 "그나마 최근 들어 소폭 매수세에 가담했던 개인 마저 실망 매물을 내놓고 있는 양상"이라며 "지난 일주일 간 기관 등의 매물을 받아냈던 개인 마저 다시 돌아설 경우 시장 전망은 더욱 어두워질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했다.
실제로 개인은 지수 급락세가 본격화한 지난달 26일 이후 지난 주말까지 1조9,353억원어치를 순매수했으나, 이날은 최근 6 거래일 만에 처음으로 700억원 가까운 순매도를 나타냈다.
LG투자증권 황 팀장은 "보름 정도를 잘라서 분석할 때, 최근 지수 급락세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직전 이래 가장 빠른 속도"라며 "700선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장인철기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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