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국방부 간부 회의. 조영길 국방장관은 "현재대로 각급 부대가 위문금품을 계속 받는다면 언젠가는 이 문제로 인해 군이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내기업과 자매결연 기업, 지방자치단체, 방산업체로부터 무분별하게 위문금을 받는 관행이 비리의 씨앗이 되고 있기 때문에 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지난해 한 일선부대에서는 장병복지용으로 배정된 예산의 집행을 놓고도 참모진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지휘관을 포함한 지휘부도 광의의 장병에 포함되는 만큼 이 예산을 지휘부 예산으로 전용해도 무방하다는 주장과 병사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할 예산을 지휘관용으로 쓸 수 없다는 논란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복지예산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사용되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국가 예산으로 지원되는 부대운영비는 물론 장병복지금으로 쓰여야 할 복지기금과 외부 위문금 등이 줄줄이 새고 있다.
사상 초유의 현역 대장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사건은 만연한 부대 예산 유용 비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신 부사령관의 구속을 승인한 조 장관은 1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신 대장은 관행의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구속했다"며 군내의 예산 전용 관행과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한 개인의 비리로만 낙인 찍기에는 부족하다는 게 군의 공통된 인식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묵인돼온 도덕 불감증, 예산 전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뿌리 깊은 군대 문화, 그리고 군 감찰·수사기관의 방조 모두가 이번 사건의 공범이었다.
군 검찰은 14일 신 부사령관을 기소하면서 "3군단장과 연합사 부사령관으로 재직하면서 개인적으로 횡령한 복지기금, 지휘운영비, 장병 위문금, 장병식비(훈련증식비) 등 공금이 1억700여만원에 달한다"며 "(공·사 구분이 불분명해) 논란소지가 있는 부분은 모두 제외했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군 검찰이 밝힌 사용처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신 부사령관은 6,785만여원을 휴가·외박비, 각종회비·기금, 납부 개인저축 2,534만여원을 친지 등의 선물비 350여만원을 가족식사비, 레저비 1,000여만원을 친지 등 접대비에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군 관계자들은 부대 운영비 외에 자금집행의 투명성이 가장 시급히 확보돼야 할 부분이 외부 위문금과 복지기금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방부에 근무하는 한 장교는 "관내 기업체로부터 위문금을 받으면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사단 또는 연대급에서 부대 운영비나 지휘활동비로 쓰는 게 보통이었다"며 "위문금 처리에 대한 부조리를 파헤친다면 걸리지 않을 장교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 부사령관 횡령 비리에서도 어김 없이 외부 위문금 문제가 등장한다. 군 검찰에 따르면 신 부사령관은 2001년 10월 자매기업인 D그룹 회장이 장병위문금으로 제공한 2,000만원 가운데 1,000만원을 부하들에게 격려금으로 지급한 것처럼 장부를 정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신 부사령관은 이에 대해 문제의 1,000만원이 군단장 이임에 따른 전별금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법정공방이 예상된다.
곪을 대로 곪았던 복지기금 문제는 지난해 이미 붉어졌던 사안. 국방회관과 육군회관에서 열린 결혼식 등 행사 횟수를 누락하거나 참석인원을 줄이는 수법으로 수년에 걸쳐 억대의 복지기금을 빼돌린 사건이 지난해 군 수사기관에 적발됐다. 장병 복지금으로 쓰여야 할 복지회관 수익금은 직원 회식비와 지휘관 공관 보수비 등으로 전용되는 등 지휘관의 사금고로 활용돼 왔다. 신 부사령관 역시 3군단장 시절 복지시설 수익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군 관계자는 "부대 운영비가 넉넉하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예산 전용을 당연한 관행으로 눈감아 준 측면이 있다"며 "결국 관행이란 이름으로 묵인돼온 도덕 불감증에다 이를 방조해온 군 사정기관까지 모든 것이 비리를 온존하는 체제"라고 지적했다. 신 부사령관 수사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개인 비리 차원이 아닌 군 문화의 문제"라면서 "사관학교 시절부터 의복부터 생활비까지 국가의 지원을 받았던 장교들 가운데 공사를 구분하는 개념 자체가 부족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와는 별도로 군 부대 공사를 통해 자금을 불법적으로 확보하는 관행도 계속되고 있다. 수해복구 공사 등 해당 지휘관의 결정으로 수의계약이 가능한 공사과정에서 뇌물과 리베이트의 수수도 상당수 부대에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는 게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해에도 진해항만도로 공사에 따른 군 부대 시설 이전공사와 관련, 건설업자로부터 1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육군 모 사령부 K대위가 구속되는 등 부대 시설건설비리 사건이 잇따랐다.
/김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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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벌 관행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건은 계속돼왔다. 다만 신 부사령관과 달리 형사처벌 대신 전역 또는 징계로 가볍게 처리됐을 뿐이다.
지난해 9월 국군체육부대(상무) 부대장이 수년에 걸쳐 각종 체육관련 협회로부터 받은 지원금을 횡령한 사건이 터져 나왔다. 합동조사단은 체육부대장 4명이 외부 지원금 1,000여만∼4,000여만원을 횡령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고 현역 3명은 보직해임, 예비역 1명은 경찰에 이첩됐다. 지난해에는 또 헌병 총수인 합조단장과 육군 헌병감, 법무관리관, 육군 법무감 등 소위 수사와 법무 핵심 간부가 줄줄이 옷을 벗었다. 이들 역시 부대 공금을 전용하거나 횡령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같이 군 부대운영자금과 관련된 비리가 나올 때마다 군은 형사처벌보다는 인사조치 등으로 사건을 마무리해왔다. 이것이 신 부사령관의 사건을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대자금 7,000만∼8,000만원을 횡령한 의혹으로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를 받고 있는 이철우 전 해병대사령관만 해도 지난해 이미 군 수사기관이 충분한 수사를 해놓고도 덮은 사건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는 조 장관이 수사기관으로부터 보고를 받고도 형사처벌 대신 전역조치를 하는 선에서 사건을 매듭짓도록 했다가 검찰의 수사 착수로 망신을 당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파문이 커지고 있다.
군 수사기관 관계자는 "신 부사령관의 혐의와 유사한 의혹을 받았지만 흐지부지된 사건이 적지 않다"며 "신 부사령관에 대한 표적수사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도 유사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국방부 대책
최근 지휘관 판공비나 부대 운영비 집행이 엄격해지면서 일부 야전부대의 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상급부대 지휘관이 예하 부대를 방문했을 때 꺼내놓는 두둑한 돈봉투의 출처는 묻지 않는 게 과거에는 '미덕'으로 통했지만 앞으로는 어림 없게 됐다.
국방부는 공금 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내놓았다. 우선 국방부는 앞으로 모든 부대운영비는 카드로 결제하도록 각급 부대에 지시했다. 또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외부 위문금은 아예 받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복지기금 관리도 대폭 강화된다. 국방부는 국방회관과 육군회관 등 규모가 큰 복지시설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기획예산처에 넣은 후 다시 타서 쓰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주로 숙박용도로 쓰이는 사단급 복지시설은 단계적으로 현역 대신 군무원에게 맡기로 했다. 수익금을 군무원 봉급으로 활용토록 해 복지시설 수익금이 지휘관의 사금고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국방부가 제시한 대책 외에도 회계 예산 전문가인 경리참모가 아닌 지휘관의 측근인 비서실장을 통한 장부 작성도 철저히 금지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비서실장을 통해 별도의 장부를 만들도록 한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외에도 측근을 통한 회계 처리로 문제가 야기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군 최고위 장성은 2002년 대통령 격려비, 추석 격려비 등 3,000여만원을 예하부대에 지급하는 과정에서 2,000여만원에 대한 영수증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착복 의혹을 받았다. 그 때도 경리참모가 아닌 비서실장이 회계처리를 맡아서 문제가 됐으며, 예하부대의 수령자가 사인한 영수증이 아닌 비서실의 지급 확인증으로 영수 처리한 비서실장은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김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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