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억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은 화제의 야외 오페라 '카르멘'이 15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개막했다. 주연 배우와 엑스트라, 합창단, 무용단, 오케스트라 등 무대에 올라간 출연진만 750명이 넘고, 국내외 제작진과 현장 진행요원까지 합쳐 1,500명에 육박하는 인력이 투입된 이 매머드 공연은 어마어마한 물량 공세에 걸맞은 화려함으로 관객을 흥분시켰다.
한쪽에 분수까지 설치된 길이 100m의 대형 무대에서 한꺼번에 수 백명이 움직이며 보여주는 거대한 스펙터클은 장관이었다. 세계 오페라 무대의 특급 스타인 테너 호세 쿠라를 비롯한 주역 가수들의 노래와 연기 또한 매우 훌륭한 것이었다. 각 막의 도입부에 무대 전면을 장악하는 스페인 무용단의 박력 넘치는 플라멩코 군무는 이 뜨거운 오페라의 음악적 흥분을 더욱 고조시켰다. 잔카를로 델 모나코가 연출한 이번 공연의 완성도는 지난해 운동장 오페라 '투란도트' 와 '아이다' 보다 크게 향상된 것으로 이런 류의 공연을 '터무니없는 돈 잔치 쇼'라고 욕하는 사람이 보더라도 반할 만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 봤자 운동장 오페라의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마이크를 쓰는 야외 공연인 만큼 실내 공연에 비해 음향이 거친 것은 어쩔 수 없다. 무대는 엄청 크고, 출연자는 워낙 많고, 운동장은 하도 넓다 보니 무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무대 위 수백 명 군중 가운데 누가 어디서 노래하고 있는지 찾아내려면 한참 걸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최측은 무대 뒤 스탠드에 스크린을, 무대 양쪽에 자막을 설치했지만 그걸 보려고 애쓰다가는 무대를 놓칠 수 밖에 없다. 자막도 거대한 조명탑에 가려져 그라운드의 사이드 좌석에서는 일부만 보인다. 그럴 바엔 집에서 잘 만들어진 공연 실황 비디오나 DVD를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이 공연은 아주 볼 만한 호사스러운 눈요깃거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을 감수하면서 최고 30만원의 비싼 표를 사서 볼 만큼 가치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호화판 운동장 오페라가 공연 티켓 값의 고공행진을 부추기는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음을 생각하면 마음은 더욱 착잡해진다. 보고 싶어도 너무 비싸서 못 보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또 어찌 할 것인가. 개막공연의 입장객은 약 3만 명. 그라운드 석(30만원, 20만원, 8만원)은 매진됐고, 스탠드 석(10만원, 8만원, 5만원)은 70%가 팔렸다. IMF 외환위기때보다 더 어렵다는 요즘, 누가 그 표들을 샀을까. 절반 이상을 기업들이 사서 접대용으로 뿌렸다. 공짜 표를 받은 손님이 꽤 된다는 얘기다.
밤 8시에 시작한 공연은 11시 40분에 끝났다. 지하철은 끊어졌고 주변 도로는 관객들이 끌고 온 승용차로 주차장이 됐다. 이미 막간 휴식 시간에 화장실 가기 전쟁을 겪은 관객들은 다시 귀가 전쟁을 치렀다. 또 밤 공기가 꽤 쌀쌀해 옷을 얇게 입고 온 사람들은 떨어야 했다. 여기 저기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멋있군. 하지만 내 돈 내고는 안 본다. 이게 왠 고생이야." 공연은 총 4회 중 18, 19일 두 차례가 더 남아있다. 예매 1544-1555, 1588-7890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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