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헌법재판소의 기각으로 '탄핵 사건'이 최종 마무리됐다. 돌아보면 두 달이 조금 넘은 탄핵 정국은 결코 짧지 않았다. 시민사회에 거세게 몰아 닥쳤던 후폭풍이 부메랑이 돼 그 진원지인 정치사회를 강타함으로써 결국 정치권 판도를 격변시켰다.탄핵에는 원인(遠因)과 근인(近因)이 있었다. 지역주의와 부패정치로 대표되는 '낡은 정치'가 원인이었다면, 상대방을 승인하지 않으려는 '오기 정치'가 근인이었다. 당사자인 대통령에게도 문제가 없지 않았지만 경미한 접촉 사고에 덜컥 운전면허증을 취소한 격이었으니 헌재의 결정은 사필귀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의 명암은 분명했다. 먼저 그 암(暗)으로 적잖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시민사회는 분열됐으며, 이는 사회적 신뢰를 더욱 악화시켰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서 명(明)도 뚜렷했다. 탄핵을 통해 많은 국민들은 정치개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했으며, 이는 자연스레 총선에 반영돼 '고비용 저효율'에서 '저비용 고효율' 정치로 나가는 계기를 이뤘다.
이제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탄핵이 위기 상황이었다면 그것을 무리 없이 극복한 만큼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전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점에서 지난 토요일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는 주목할 만하다. '상생의 정치'를 모색하고 개혁 드라이브를 강화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개혁과 통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반영하고 있다.
문제는 여야 모두 말하고 있는 상생을 제대로 실천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당면 현안인 민생에서 중장기적인 여러 정책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에는 집단간 이견의 차가 작지 않다. 더욱이 이 이견들은 서로 다른 이념과 이익에 기반해 있어 조정이 간단치 않다. 이 점에서 정치권은 먼저 상생의 방법론을 숙고해야 한다.
진정한 상생이란 최대한의 인내를 갖고 대화와 타협을 존중하는 동시에 시민사회 공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을 말한다. 다수결은 언제나 최후의 선택으로 남겨 둬야 한다. 권위주의와 상명하달식 통치 패러다임은 20세기적 아날로그 정치일 따름이다. 대화와 타협에 기반한 정치권 내부, 정치권과 시민사회 간의 활발한 소통이 부재하다면 정치는 물론 경제 및 사회 영역에서도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어려운 것은 자명하다.
더불어 상생의 구체적인 콘텐츠를 갖춰야 한다. 상생의 진정한 대상은 상대 정당이라기보다 국민 다수다. 국민들이 정치권을 불신한 이유는 그들 간의 상생이 이뤄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국민의 생활을 외면한 반(反) 민생 정치에 있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국민을 주체로 한 '우리들의 리그'로 정치를 갱신하는 것이야말로 여야 모두가 갖춰야 할 상생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이와 연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은 '역사적 대타협'이다. 오늘날 우리사회가 직면한 상황은 과거 '박정희 시대' 또는 '양김 시대'와는 사뭇 다르다. 성장 일변도의 전략이나 단기적인 처방만으로 현재 우리사회의 문제들을 풀기는 어렵다. 투자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국민국가적 국익을 고려하는 동시에 보편주의적 인권을 껴안아야 하는 것이 우리사회가 당면한 과제다.
중요한 것은 혁신과 통합만이 현재의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혁신과 통합은 '역사적 대타협' 다시 말해 자본과 노동, 사회적 강자와 약자 사이의 새로운 협약을 통해서만 지속가능하고 실현가능하다.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기 전에 새로운 사회협약, '역사적 대타협'이 이뤄지길 간절히 기대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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