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7월 출범할 이라크 임시정부가 원한다면 17만 명의 이라크 주둔 미군을 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이는 미국의 이라크 포로 학대를 계기로 확대 재생산되는 이라크 내 반미여론을 의식하고 유엔 개입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전술적 목표에 따른 것이지만, 미국이 이라크에서 후퇴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 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이라크 여론을 중시한다는 태도는 파병을 검토·준비 중인 한국 등이 이라크 정세를 더욱 중요한 변수로 다룰 가능성을 높이는 등 적지않은 파장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요청하면 철수한다?
14일 워싱턴에서 열린 G8(선진 8개국) 외무장관회의 후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영국 일본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공동회견에서 임시정부 요청에 따라 자국 군대들을 철수할 수 있다고 밝혔다.
파월 장관은 그러나 "그들이 철수를 요청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으며 임시정부는 연합군의 존재와 작전을 환영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 전까지 미국은 2005년 선거로 선출된 이라크 합법정부가 미군 철수를 요청하면 고려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라크 연합군 임시행정처(CPA)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라크 국민의 82%는 연합군의 주둔을 반대하고 있다.
미국의 진의는
파월의 속뜻은 '임시정부는 미국의 꼭두각시가 아니라 미군 철수를 요청할 만큼 독립적인 정부가 될 것이니 유엔과 세계는 이라크 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해달라'는 쪽이다.
파월 장관이 7월 이후 연합군의 이라크 주둔을 위해서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과 이라크 행정법이 주둔에 필요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결국 파월은 연합군 철수 시간표를 명기하고 임시정부에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쪽으로 결의안을 구상 중인 프랑스 독일 러시아의 입장을 누그러뜨리고 이라크 주둔 연합군의 외연 확대를 위해 이 같은 수사(修辭)를 동원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15일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 백기항복으로 비칠 수 있는 조기 철수 가능성을 거론조차 하지 않으면서 "주권이양 후에도 미군의 핵심 임무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해 파월 발언의 속뜻을 보다 분명히 했다.
반전국의 협조는 힘들 듯
파월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으로부터 협조를 얻어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프랑스와 러시아 캐나다는 14일 앞으로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물론 프랑스 등은 미국이 유엔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하고 주권 이양 후 이라크 군대가 미군의 지휘를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용토록 하는 내용의 안보리 결의안에 미국이 동의할 경우 어느 정도 협조할 것이다. 콘돌리사 라이스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러시아 등을 방문 중인 것도 이런 타협점을 찾기 위한 것이다.
미 국내정치적으로 볼 때 부시 대통령은 조기 철군을 현실 변수로 고려하고 있지 않지만 이라크 정책 실패가 재선의 결정적 걸림돌이라고 판단할 경우 모종의 결단을 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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