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방북 결정을 둘러싸고 일본에 '북풍(北風)'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아사히(朝日)신문은 16일 "정권유지를 위해 무리를 하는 것은 아닌가"라며 "꼭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면서도 상대방에 얕잡히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고 꼬집었다.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고이즈미 총리가 정국타개를 위해 방북카드를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고이즈미 총리는 14일 오후 정부대변인인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의 기자회견을 통해 방북을 발표한 직후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총리비서관을 시켜 슬쩍 자신의 국민연금 보험료 미납사실을 공개했다.
보험료를 인상하고 수령액을 줄이는 연금개혁법안이 국회 상정돼 있는 가운데 속속 드러나는 정치인의 연금 미납 파문은 현재 일본 정가에서 최대 쟁점이다. 지난 7일 정권 2인자인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관방장관, 10일 제1야당 민주당의 간 나오토(菅直人) 대표가 연금 미납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참의원 선거전략으로 평양에 직접 가서 피랍자 가족을 데리고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하던 고이즈미 총리가 자신의 연금 미납에 대한 언론의 취재가 시작되자 서둘러 방북을 결정하고 발표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만 하다.
민주당의 간 전 대표는 15일 "이 시기에 방북 발표를 한 것은 미납 감추기"라며 "자신의 위기를 덮기 위해 외교문제를 이용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비난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전직 총리들에게 방북 결정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도 "외교를 내정에 이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쓴 소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전 외무성 장관은 "지지율이 떨어지기만 하면 방북 한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이번에도 미납 문제가 있어서 방북 하는 것 아니냐"고 2002년 방북까지 싸잡아 비판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방북 카드를 뽑은 배경에는 자민당 간사장 출신으로 "고이즈미 정권의 천적(天敵)" "선거귀신"으로 불리우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씨가 민주당 새 대표를 맡아 강공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는 정국흐름도 작용한 것 같다. 도쿄(東京)신문은 사설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에 대해 "총리 자신과 정부여당 간부의 연금 미납, 오자와씨의 민주당 대표 취임 등이 정권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참의원 선거용 실적을 만들려는 노림수"라고 분석했다.
민주당은 일단 연금 미납만을 들어 고이즈미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방북 이후 납치문제의 해결 수위, 북한에 대한 추가 지원, 핵 문제의 추이 등에 대한 여론 동향에 따라서는 야당과 언론, 자민당 내 대북 강경파로부터 '대북 퍼주기·저자세 외교'라는 비난이 거세질 가능성이 남아있다. 워싱턴포스트도 "고이즈미 총리가 피랍자 가족의 송환을 위해 북한에 너무 달콤한 재정지원을 약속하거나 핵 문제에서 아무 진전을 거두지 못할 경우 국내외에서 이미지에 손상을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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