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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 신인열전]<14> 민노당 강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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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 신인열전]<14> 민노당 강기갑

입력
2004.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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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게 그을린 얼굴, 다듬지 않은 수염과 긴 머리, 개량한복, 그리고 고무신…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첫 등원하는 강기갑 당선자는 농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촌부(村夫) 모습 그대로다. 실제로도 그는 1971년 농고 졸업 후 줄곧 고향에서 농사를 지어왔고 지금은 과수원 5,000여평에서 젖소 100여두를 기르고 있다. 또 여느 농사꾼과 마찬가지로 1억여원의 농가부채도 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역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여느 농부와는 다른 모습이 눈에 띈다. 우선 가톨릭농민회에 참여한 뒤 76년 함평 고구마 사건, 79년 안동 오원춘 사건 등 굵직굵직한 농민운동의 현장에 항상 있었다. 지난해에는 전국을 뜨겁게 달궜던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를 주도했고, 멕시코 칸쿤으로 날아가 세계무역기구(WTO) 협상 반대시위도 벌였다. "당 비례대표 경선 이틀 전에 부의장을 맡고 있는 전농에서 후보로 나가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농민투사인 그는 한 때 수도사가 될 뻔 했다. 82년 전두환 군사독재가 본격화하자 인천의 한 수도원에서 6년간 신학공부에만 전념한 것. 하지만 그는 87년에 다시 농산물 수입개방 반대투쟁에 나섰다.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다는 게 이유였다. 그 때부터는 '농촌총각 결혼대책위'도 꾸려 130여명의 배필을 찾아줬고, 그 역시도 대책위에서 함께 일하던 박금옥씨와 결혼에 골인했다.

강 당선자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농사짓는 마음으로 국민을 위하면 되지 않겠느냐"며 "농업이 환경보전산업이자 경제기반산업이라는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몸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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