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료 생각은 안 합니까."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 기각된 14일, 한 고위공직자가 지나가듯 말했다. 63일간의 직무정지 기간을 앞 다투어 미화(美化)하는 학계와 언론을 향한 불만으로 들렸다.3월12일 이후 국정 시스템은 흔들림이 없었다는 데 대부분 언론의 평가가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정치권, 그리고 온 국민이 민주주의를 체험적으로 학습할 소중한 경험이 됐다는 예찬론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밀린 숙제를 시작하는 공직사회에선 득(得)만 보고 실(失)을 덮어두려는 이 같은 태도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엄밀한 의미에선 지난 2개월은 잃어버린 시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급히 처리해야 할 현안들이 때를 놓친 사례가 적지 않다.
가령 국가예산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한 중기 국가재정운용계획 확정과 비정규직 해소문제 등은 정부 내에서 논의를 마쳤으면서도 대통령의 결정을 반영할 수 없어 계속 순연됐다.
대외정책에서의 손실은 더 크다. 북한의 용천역 참사를 계기로 남북한 간에 많은 회담과 접촉이 있었다. 고건 총리의 독려로 북한에 대한 지원은 실기(失機)하지 않았지만, 이 지원이 남북최고당국자 간의 신뢰증진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정부의 다른 고위관계자는 "아무래도 추진의 주체가 없다 보니 정상외교·남북관계 현안 등 손을 놓고 있었던 문제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헌재 결정이 나온 뒤 대통령과 야당이 잇따라 국민에 대한 사과 담화를 내놓았다. 광풍은 그쳤지만 탄핵이 남긴 후유증, 그리고 기회비용은 헤아릴 수도 없다. 국민을 향한 태도가 겸손해졌다는 것 만으로 이런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정상원 정치부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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