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경제가 어렵다는 데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당장 피부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부분에 이르면 의견이 뚜렷이 갈라진다. 정부와 재계가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고, 정부와 여당도 딴 소리를 하고 있다. 정부 내에서도 부처 사이에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경제 주체간 논쟁과 부처간 혼선이 한국의 국가 경쟁력을 저해한다고 밝힐 정도다.■ 총선 이후 두드러진 것이 성장과 분배에 관한 논쟁이다. 대거 의회에 진출한 진보세력과 보수진영 간의 갈등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집권층 안에서도 우선 순위를 놓고 공방을 계속하고 있다. 경제 부총리 출신인 열린우리당 홍재형 정책위원장은 "겨울이 오는데 오지 않는다고 해서는 안 되고 오버코트를 준비해야 한다"며 지금은 분배보다 성장을 우선시 할 때라고 강조했다. 소주도 안 팔릴 정도의 불황이라는 것이다. 반면 대통령 정책특보인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은 "성장이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개혁 없이는 불가피하다"며 일시적 경기부양과 몇 발짝 못 가서 발병나는 성장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와 재계 사이의 논쟁은 한 걸음 더 나갔다. 이동걸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은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시장경제는 그들만의 시장경제"라며 기득권층이 명시적 묵시적 대연합을 통해 그들만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기존의 비리와 반칙을 정당화하고 영속화하려 하고 있다며 재계를 비판했다. 그러자 현명관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자본주의는 사유재산제를 기본으로 하는데, 세계 경제사가 입증한 이 같은 사례를 요즘 유감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정부의 재벌 정책에 정면으로 반발했다.
■ 이런 논쟁들은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좀더 잘살아 보자는 충정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믿으려 해도 그 같은 느낌이 얼른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뭔가 공허하다. 그 틈새에서 김석동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의 '정책 실명제' 제안이 눈길을 끈다. 김 국장은 누가 어떤 주장을 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나중에 명확히 알 수 있도록 정책 실명제를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정책에 책임을 지자는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책임을 묻는다고 해서 한 번 망가진 경제가 되살아 나기는 어렵다. 이제 탄핵문제도 일단락 됐다. 실명제라는 마음가짐으로, 사심 없는 냉철한 분석과 합의에 바탕을 둔 정책을 기대한다.
/이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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