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8일 미국 뉴올리언스 대에서 열린 세계 로봇경진대회 '로보컵(ROBOCUP)' 현장. 최첨단 로봇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온 길이 74㎝, 폭 47㎝의 자그마한 로봇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대회에 처음 참가하는 나라에서 만들었다는 검은색 기계는, 다른 로봇들이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고 바닥 틈에 바퀴를 박고 꼼짝달싹 못할 때 계단과 커브를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며 모의 희생자의 위치를 정확히 보고했다. 또한 레이저 센서와 열 감지장치를 사용, 생존자의 위치를 찾아낸 후 다가가면서 현장의 지도까지 자동으로 그려냈다.
3일 동안 7번에 걸쳐 재난 현장을 바꿔가며 실시하는 대회는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지진현장에서 20분간 상황을 파악한 후 모의 희생자를 찾아내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경기가 끝난 후 롭해즈가 받은 점수는 123점. 역대 최고 기록일 뿐 아니라 2등을 차지한 미국 인디애나대 팀을 무려 107점 차로 누른 놀라운 점수였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이 로봇의 이름은 '롭해즈(ROBHAZ) DT―3'로 4월19일 위험작업로봇 선진국으로 꼽히는 일본 '국제재난구조센터'에 각각 6만달러에 판매됐다. 이와 더불어 11일 정부는 이라크에 파병될 자이툰 부대에 2대의 롭해즈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험한 지형도 척척, '더블 트랙 매커니즘'
롭해즈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지능로봇연구센터 강성철 박사팀이 과학기술부 '민군 겸용 기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99년 8월부터 (주)유진로보틱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서울대 등과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의 결실이다. 로봇의 앞 글자(rob)와 '위험'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hazard'의 앞자를 따서 이름을 지었다.
롭해즈를 다른 재난 로봇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더블트랙 매커니즘'이다. 로봇의 몸체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울퉁불퉁한 지형에 착 달라 붙고 그런 만큼 쉽게 움직인다. 네 개의 바퀴에는 탱크에 쓰이는 캐터필러 네 개를 달았다.
뒷바퀴 두 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자형이고 앞바퀴는 삼각형 모양이다. 평지에서는 앞 바퀴가 펴진 상태로 뒷바퀴와 연결돼 기다란 일자 모양이 되고 계단 등 장애물을 만나면 삼각형 바퀴가 진가를 발휘한다. 또한 트랙과 몸체 사이에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장치가 있어 험한 지형에서 로봇 몸체가 상하는 것을 방지해준다.
두 명만 있으면 작동 가능해
롭해즈는 기능상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재난 현장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몸체와 실질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적용 장치가 그것.
롭해즈의 앞부분에 달린 기본 카메라는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여 원격 조종 시 운전자에게 영상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 밖의 장치는 임무에 따라 필요한 것으로 골라 달기만 하면 된다. 본체 무게 39㎏의 1.5배가 넘는 69㎏까지 장치를 탑재할 수 있기 때문에 신호 규격만 맞추면 자외선 카메라, 열 감지 카메라, 레이저 센서 등 용도에 따른 장치를 여러개 붙일 수 있다.
운전은 노트북 컴퓨터 모양의 원격조종장치로 한다. 영상을 볼 수 있는 모니터와 명령을 입력하고 자료를 저장하기 위한 키보드, 운전을 쉽게 만드는 핸들 격인 컨트롤 패드로 구성된다. 이전의 위험작업 로봇은 몸체가 커 버스 한대 분량의 원격 조정장치가 동원돼야 했지만 롭해즈 작동은 두 명의 인원이면 충분하다.
떨어져 있어도 각 부위가 기능을 잃지 않는 '모듈화' 설계로 조립과 분해도 간단하다. 실제로 강 박사팀은 로봇경진대회 출전을 위해 비행기를 탈 때 '롭해즈'의 무게가 문제가 되자 이를 분해, 시합 전날 호텔에서 조립해 사용했다.
이라크에서는 무엇을 하나
이라크에 투입될 롭해즈는 어떤 기능을 수행하게 될까. 위험작업로봇의 주 임무는 다칠 위험이 있는 지역에서 사람이 할 일을 대체하는 것이다. 9·11 테러 당시 현장에 투입된 초소형 로봇은 약 7구의 시신을 더 찾아낸 바 있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도 폭발물 탐지, 야간 정찰 등에 로봇이 쓰였다.
위험작업로봇 개발에 가장 관심이 있는 나라는 일본.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지질학적 특성 때문이다. 무너져 내린 건물에서 생존자를 찾기 위해 투입된 구조요원이 2차 붕괴로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로봇이 쓰인다.
이라크에서 롭해즈가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될 분야는 폭발물 탐지 및 처리다. 개가 화약 냄새로 폭발물을 찾는 것과 같은 원리의 이온 감지기를 통해 위험물의 위치를 알아낸다. 폭발물 가까이 다가가서는 이를 자세히 관찰, 구조와 뇌관의 위치를 알아낸 후 무력화 시킨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뇌관을 자르는 것은 자폭 행위. 롭해즈가 쓰는 것은 물의 압력을 이용해 뇌관을 와해하는 '물포총'이다.
연구팀 이우섭 연구원은 "롭해즈에 어떤 장치를 다느냐에 따라 응용 가능한 분야는 다양하다"며 "앞으로 위험작업로봇은 무슨 일을 하느냐 보다 각각 다른 특징을 지닌 타 로봇과 어떤식으로 협력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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