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불편하다고 학생들과 같이 앉은 채로 편하게 강의를 해서야 되겠습니까. 스승으로서 학생들에게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지요."21년째 변함없이 양손에 목발을 짚고 강의를 하는 단국대 경상학부 우영환(55) 교수. 2급 지체 장애의 몸이지만 절대 의자에 앉거나 휠체어 등에 의지하지 않는다. 목발을 집고 교단 위에 꼿꼿이 서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설명하면서 칠판에 글을 써 내려간다.
우 교수가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힘든 자세를 지켜나가는 것은 옛 은사에게 배운 참 교사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 또 다짐해 왔기 때문이다.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것은 영원히 잊지 못할 마음 속의 은사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 교수는 5월15일 스승의 날이 되면 온 가족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다. 이날은 제자들의 방문도 되도록 사절한다. 이날만큼은 자신의 옛 스승인 앙드레 부통(Andre Bouton) 신부의 은덕을 기리고 싶어서다. 그는 부인, 두 아들과 함께 부통 신부의 영정 앞에서 제(祭)를 지내면서 회상에 젖는다.
우 교수는 두살 때 소아마비로 평생을 목발에 의지해야 하는 장애인이 됐다. 노점상을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서울 대광중학교를 나온 뒤 검정고시를 거쳐 어렵사리 경희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 시절 취미로 불어공부를 하다 알리앙스 불어학원에서 부통 신부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부통 신부는 장애를 딛고 노력하는 우 교수에게 친자식과 같은 열의와 정성을 쏟았고, 그런 그를 우 교수는 아버지이자 스승처럼 따랐다.
대학을 졸업하던 1972년 우 교수는 프랑스 유학의 꿈을 밝혔고, 부통 신부는 현지에서 숙소와 생활비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독지가 데제씨를 소개시켜줬다. 마침내 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81년 그르노블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2년 후 단국대에서 꿈에 그리던 강단에 서게 됐다.
"신부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지금도 아찔할 뿐입니다. 불어 선생님이고, 인생의 스승이자 평생 은인인 부통 신부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게 죄스럽기만 합니다." 81년 부통 신부가 세상을 뜨던 날, 우 교수는 박사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어 장례에 참석치 못했던 것.
그래서 우 교수는 부통 신부의 기일과 스승의 날이 되면 늘 집에서 가족과 함께 기도를 드린다. "힘이 부칠 때까지 학생들 곁에 머무는 것이 꿈입니다. 내 제자들에게도 신부님이 가르쳐주신 영혼의 행복을 선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성철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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