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그저 사라지는 것은 없다피터 바튼, 로렌스 셰임스 지음·현중 옮김
따뜻한손 발행·1만2,000원
'웰다잉(well-dying)'은 요즘 흔한 '웰빙(well-being)'보다 무게가 느껴지는 말이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어떻게 잘 살까를 함께 궁리하지만 그것을 훌쩍 넘어선다. 거기에는 인생을 화려하고 편안하게 살겠다는 값싼 욕망보다, 삶을 진솔하고 슬기롭게 꾸려가겠다는 진정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TV에서 처음 홈쇼핑을 선보인 미국 사업가 피터 바튼(1951∼2002)의 인생은 '웰다잉'의 좋은 사례다. 바튼의 삶과 죽음을 그린 이 책은 뛰어난 창의성으로 부와 명성을 한 손에 거머쥔 탁월한 기업가가 어떻게 인생에서 성공했는지, 또 그가 갑작스레 닥친 죽음을 얼마나 슬기롭게 맞았는지 보여준다. 단명인 가계의 숙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50세에 암에 걸린 그가 작가와 마주앉아 7개월 동안 나눈 이야기를 풀어서 정리한 책이다.
1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소년 가장 노릇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인생을 개척해간 그가 얼마나 도전적이었는가는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 후 직업 선택 과정에서 드러난다. 1982년 다른 졸업자들이 높은 몸값으로 팔려나갈 때 그는 스스로 초봉을 0원으로 정하고 작은 케이블TV 회사에 지원했다. 4년 뒤 그는 홈쇼핑이라는 새 사업을 세상에 선보였고, 이 회사는 2년 뒤 매출 10억 달러, 직원 4,500명의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디스커버리' 채널 등을 거느린 리버티 미디어를 창업해 최고경영자에 오르면서 그는 불과 몇 년 사이 미국 멀티미디어 산업의 미다스의 손이 됐다. "즐겁게 일하다 보면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죽음 앞에서 그는 결코 당황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아버지처럼 심장병으로 갑자기 죽지 않고 삶을 정리할 기회를 준 것에 오히려 감사했다. "죽어가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것은 정확히 같은 분량으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여겼다. 작가의 글솜씨에 유려한 번역이 더해져 바튼의 인생이 한껏 멋있게 보이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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